몇몇 유치찬란한 부분에서 실소가 터져 나오긴 하지만, (잘모르는사람들에겐)과학적으로 논리가 타당하게 뒷받침돼있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도 탁월하다.
작가가 재밌게 썼다는 공생가설이 제일 아쉬웠는데 연구실의 대화가 마치 중학교 방과후 과학탐구시간의 학생토론을 보는 듯해 손발이 오글......
그렇지만 소수자, 특히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에 관한 화두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여성문제에 관한 단편들도 무게가 가볍지 않았는데, 앞으로 작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통렬한 시각이 과학적 논리와 상상력으로 한데뭉쳐 풀어줄 세계가 너무 기대된다.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발생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존재를 폐기하는 것은 릴리에게 어떤 종류의 죄책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릴리는 내가 그녀와 똑같은 유전병을 가진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즉시 폐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릴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릴리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의 결함을 발견한 순간 이후에 남아 있는 릴리의 기록은 제대로 해독하기가 어렵다.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은 단한 줄이었다.
릴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로써 나는 태어날 가치가 없었던 삶임을 증명하는가?
릴리는 나에게서 스스로를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원치 않았던 존재로 태어난 릴리. 세계에서 배제된릴리. 그러나 악착같이 살아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가능성을 입증한 릴리 다우드나.
그녀의 결정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도 나는모르겠다. 릴리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를증오하지는 못했다.(47p)

괜한 정의감에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195p)

부정적 감정 라인은 판매되는 물량에 비해 실 사용량이 적대요.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205p)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214p)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 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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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16p)

찬성은 본능적으로 이런 때 작은 금욕과 희생을 감내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리란 걸 알았다.(77p)

누군가 양동이에 소음을 담아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옆자리의 학생들이몇십 분째 누군가를 맹렬히 헐뜯는지라 나는 그만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걔가? 그 교수랑? 어머, 어떻게 그래? 타인이 아닌 자신의 도덕성에 상처 입은 얼굴로 놀란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도 잘 아는 즐거움이었다. (153p)

곽교수는 ‘단계‘ 없이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고 나쁘게 보면 제멋대로인.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도손해 보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왔거나 반대로 그렇게 잃은 것들을향해 복수하듯 떠들어대는 성격인 듯했다. 그런데 그게 마냥 수다스럽지만은 않아 힘을 빼고 높은 패를 던질 땐 ‘선수‘ 같았다. 곽교수는 자신이 이공 계열 교수들과 친하다며 그 판 사람들은 꼬인게 덜해 좋다고 했다. 책은 우리랑 비슷하게 읽는 것 같은데 원한이 없어 편안하다고. 나는 그것도 일종의 착시 아닐까 생각했지만 토 달지 않았다.(163p)

어느 화제든 상대의 진심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태도가 담백하고 노련했다.(164p)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씨 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173p)

- 그건 내가 한 선택들이 아니잖아.
- 온전히 자기가 하는 선택이 어디 있어.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 (255p)

-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199p)

가끔 엄마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활달함이랄까 생명력이 실은 무례와 상스러움의 다른 얼굴이었나 싶어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내 사촌언니 두 명이 한 달 새나란히 사고로 아이를 잃자, 엄마는 ‘어쩌다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집안 죄받았다 할까봐 부끄러워 어디가서 말도 못 꺼낸다‘고 했다. 그것도 상복 입은 사촌언니 앞에서.
엄마가 늙었나? 그새 분별력과 자제심을 잃었나? 얼굴이 달아올랐다.(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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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선택한 평이하고 무난한 작가. 그래서 작품의 수준도 그만큼의 중국의 수준.

"가난, 가난한 생활이 나를 질식시켰어."
(25p)

햇빛이 나무에 영향을 주더라도 나무는 나무의 방식으로 성장하지 햇빛의 방식으로는 성장하지 못한다.(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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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향수였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물었을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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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 문학작품을 읽는다. 만약 이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이해와 감상은 다른 독자는 물론, 작가의 그것과도 전혀 다를 것이다.
나는, 작가로서, 동일한 내 작품이라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생활이 변했고, 감정도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자기 작품의 서문에 쓰는 내용은 사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느낀 바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싶어 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온 것말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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