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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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공정성, 취재 윤리에 대해서 따지기도 중요하지만, 윤리와 도덕은 너무 비현실적이니 저널리즘은 단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언론사가 한 사건을 두고 취재하며 싸지른 배설물만도 못한 기사를 보도하고, 이는 결국 살인과 폭력사건으로 이어진다. 사건뿐만 아니라 사건을 보도함으로 인해 다른 사고들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쓰레기 저널리즘이라고 고발한다. 인물들의 냉소적이고 신랄한 비아냥과 작가의 필력 덕분에 재밌기까지 하다.
다만, 작가가 언론에 대한 복수심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작품의 질을 좀 떨어뜨리지 않았나.
그리고 언론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실을 왜곡해서 보도하는 것이 우리가 늘상 교묘하게 말을 바꾼다든지, 상황의 선후관계를 뒤집어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는 반성도 해 보았다.

카타리나 블룸은 그녀의 지인 볼터스하임의 댄스 파티에서 만난 괴텐과 첫눈에 눈이 맞아 불타는 사랑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괴텐은 공개수배중인 범법자였고, 카타리나는 괴텐의 도주를 도와주고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그녀가 가정부로 일하던 블로르나 부부는 휴가에서 급하게 복귀했고, 가택 수사와 심문을 받는 과정 중에 주변인들로부터 카타리나 블룸의 집에 ‘신사의 방문’이 찾았다는 증언을 듣는다. 카타리나의 자동차 주행기록으로 ‘비밀스러운 드라이브’와 고액의 반지와 편지가 집에서 발견되어 그녀의 행실에 대한 의심을 받게되고, <차이퉁>지는 카타리나를 마녀사냥하듯 악의적인 추측성 보도를 내보낸다. 하지만 수사팀은 괴텐과 사랑에 빠져 그의 도주에 협조한 혐의 외에는 이성적이고 사리분별에 철저한 그녀에게 다른 결점을 찾아낼 수 없었고, 블로르나 부부의 가사도우미 역할에 매우 충실했으며, 그녀가 연락이 두절됐다는 어머니에게 매달 병원비를 보내고 있었고, 절도죄로 복역중인 오빠에게도 매달 용돈을 보내고 있는 등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것도 밝혀진다.
카타리나에게 추근댔던 ‘신사’는 블로르나의 지인인 알로이스 슈트로입레더였고, 휴가에서 급하게 돌아온 블로르나 부부를 찾아 자신이 반지를 강제로 선물한 사람임을 밝히며, 자신이 반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별장의 열쇠까지 카타리나에게 준 사실을 밝히며, 괴텐이라는 자가 카타리나의 도움으로 자신의 별장에 숨어든 것 같다며 블로르나에게 별장을 가 볼 것을 부탁하지만 같은 시각 괴텐은 슈트로입레더의 별장에서 체포된다.
<차이퉁>지의 퇴트게스 기자는 블룸부인의 인터뷰를 위해 병원출입을 요청하지만 담당의사가 거절하였고, 페인트공으로 분해 병원에 무단 침입해 결국 블룸 부인을 인터뷰를 하여 진술을 교묘히 바꿔 보도한다. 퇴트게스는 이를 영웅담처럼 떠벌리고 다녔으며, 퇴트게스의 방문으로 충격을 받아 블룸 부인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괴텐이 체포된 후 카타리나와 블로르나 부부, 볼터스하임과 그녀의 남자친구 콘라트는 함께 카페에 모여 블룸 부인의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오고 블로르나 부부의 집에서 저녁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카타리나는 <존탁스차이퉁>에 퇴트게스가 카타리나의 비밀 드라이브를 ‘숙녀 방문’이라고 칭하며 카타리나를 창녀로 묘사하고, 그녀의 행실로 블룸 부인이 충격을 받아 사망한 피해자이며, 괴텐의 도주를 협조하는 과정에서 슈트로입레더의 도움을 악용하였고, 그녀가 살던 아파트가 투르데 블로르나가 설계한 것임을 근거로 ‘빨갱이’ 투르데의 공작까지 의심하는 기사를 보고난 뒤 총을 챙겨 퇴트게스를 만나러 간다. 퇴트게스가 자주 출몰하는 식당에서 그를 보지 못하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고, 결국 카타리나의 집으로 찾아온 퇴트게스가 그녀를 덮치려는 순간 카타리나는 퇴트게스를 총으로 쏴죽여 버리고 자신을 심문했던 뫼딩 경사를 찾아가 자수한다.
블로르나는 카타리나의 변호를 맡지만 카타리나 아파트 신탁권리권을 넘겨받으며 경제적 상황이 안좋아지고, 투르데는 배임죄로 설계사무실에서 해고당해 소송을 진행중이며, <차이퉁>은 블로르나 부부의 이혼 루머를 보도하고 있었다. 그와중에 블로르나가 후원하는 브레데리크 르 보슈의 전시에서 휴트로입레더 부부를 만난 블로르나 부부는 슈트로입레더의 뻔뻔스러운 입질에 폭력을 휘둘러 버리고, 카타리나는 괴텐과 자신이 석방된 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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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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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계가 인공지능에게 점령당한다는 식상한 예언이 아니라 인간은 결국 스스로 전멸하고 인공지능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시각이 획기적이었다.

달마와 선이의 대화를 읽으면서 김영하작가의 인간 존재론에 대한 고찰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참고서적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네요."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은 아니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럼 미래를 알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건 ‘미래‘라는 말이 뭘 의미하느냐에 달렸어."
그때 나는 그녀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녀는 우주의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 아니, 시간 자체가 지구에 사는 인간 중심의 개념일 뿐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으니까.

"인간도 싫어하지만 저들이 가장 미워하는 건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 기계야. 재수없어 해."

처음엔 그저 그들을 흉내냄으로써 안전을 도모한다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관절은 연골과 윤활액 대신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기화학 제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뇌에 뉴런 대신 회로가 있다는 것 등의 차이들이 있겠지만, 이미 많은 인간이 뇌에 칩을 박아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잘린 팔다리 대신 인공 수족을 장착하여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인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이런 의문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고전 SF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하던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인공지능이 우리를 왜 필요로 하겠어? 우리가 인간일 때만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거야. 인간은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으니까. 우리의 비밀이 낱낱이 밝혀지면, 아마 그런 날이 곧 오겠지만, 업로드된 우리의 의식을 기계들이 뭐하러 보존하겠어? 그 의식을 돌리느라 에너지만 잡아먹을 텐데. 어느 날, 한 기계가 다른 기계에게 묻겠지. ‘저장 장치가 꽉 찼습니다. 쓸데없는 파일들을 지우시겠습니까? 그럼 다른 기계가 ‘예’버튼을 누르겠지. 그렇게 그냥 사라지는 거야. 영생은 헛된 희망이야."

인도에 가서 기억을 지우면 선이 너도 잊어버릴 텐데 괜찮아? 나는 묻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선이는 팔을 잃은 민이에게 책임을 느끼고 있었고 수용소에 오기 전에 겪은 민이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주고 싶어했다.
가장 완벽한 치유는 기억의 리셋일 테니, 그것만 가능하다면 자기 따윈 잊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기계들도 언젠가 종교를 상상해낼 거라 생각한 반면, 선이는 기계가 일단 의식을가진 이상,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고, 그러니까 인간의 의식과 깊은 수준에서 ‘연결’되기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기계에게 의식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의식이 태초에 인간에게 깃들었듯이 이제 기계도 인간과 같은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활성화된 이 휴머노이드가 과연 여러분에게 고마워할까요?"
"그럼요.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으니까요. 죽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거든요."
"생존 본능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만약 이 휴머노이드에게 애초에 선택권이 있었다면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태어나겠다고 결정했을까요?"
선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었을 거예요. 민이의 짧은 삶은 고통뿐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활성화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시 살아난다 해도 이 휴머노이드에게는 별로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저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은 당신의 말입니다. 아마 죄책감은 잠시 줄어들겠지요. 이 휴머노이드가 다시 살아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 휴머노이드도 당신들을 다시 보게 되면 반가워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거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이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요."
나는 그렇게 선이를 다그치는 달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든 살릴 수 있으면 살리는 게 맞잖아요. 안 그래요? 그럼 인간들은 왜 다치면 모두 당연하게 응급실로 가죠? 왜 의사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이 행복할 것 같은 환자들만 살리지 않고 전부 다 살리려고 애쓰죠?"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이니까요. 그들은 오랜 세월 사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윤리를 확립해왔고, 그래서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살려두려고 합니다. 환자의 생각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생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소중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걸 금과옥조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온 것은 또 아닙니다. 인류가 벌인그 수많은 전쟁을 생각해보십시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의 문제이고 우리는 지금 한 휴머노이드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이 휴머노이드를 재활성화, 아니 여러분의 표현대로 살리는 것이 정말 이휴머노이드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여러분이 확신하느냐는 것입니다."
선이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달마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의식을 가진 존재, 특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바다의 물고기든 하늘의 새든,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휴머노이드들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고통도 없었을 테니까요."
"살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지 않아요?"
나는 달마에게 물었다.
"태어났다면 느낄 기쁨을 태어나지 않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게 참으로 손해일까요? 손해라 느낄 존재가 아예 없는데요?"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기쁨과 고통을 마치 장부상의 흑자와 적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임계점을 넘어가는 극한의 고통은 나중에 그 어떤 기쁨이 주어지더라도 장부상의 숫자처럼 간단히 상계되지않습니다. 모든 생명체에 내장된 프로그램은 고통을 피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생존을 도모하고 번식에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잠깐의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며 보냅니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보내게 되고, 죽음은 잊지 않고 생명체를 찾아옵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를 살려서 이제 더는 겪지 않아도 될 이 모든 고통을 다시 겪게 할 것인가요? 그게 정말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일까요?"

"민이는 아예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아니니까요. 민이는 이미 태어났고 말씀하신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지요. 저는 민이가 다시 의식을 회복해서, 그러니까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로 다시 깨어나 그것의의미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지로 생을 살아가다가, 누군가로부터 폭력적으로 살해당하거나 하지 않고, 자연이 정해준 수명을 다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우주의 일부로, 다시 의식과 영성이 없는 존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거예요."
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제 말이 곧, 이미 태어난 존재들이 당장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다른존재를 마음대로 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아예 태어나지 않음은 누구의 괴로움도 아니지만, 폭력은 다른존재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하는 명백한 해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가 두려움 속에 폭력적으로 삶의의지를 짓밟히고 살해당한 것은 부당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되살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은 달라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의미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들은 의미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아까 고통의 의미라고 하셨지요?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들은 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고통이 없이는 아무의미도 없다고 말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선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요. 고통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의무가 있어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높은 지성을 갖추려고 애쓰는 것도 그걸 위해서예요."
달마는 그 말을 듣고 손뼉을 쳤다.
"맞는 말씀입니다. 동감입니다.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 그게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하려는 것입니다."
달마는 벌떡 일어나 창고 안을 오갔다.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물론 사자도 살아 있는 영양의목을 물어뜯고, 배부른 곰도 재미로 연어를 사냥해 눈알만 파먹고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누구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우리 기계까지도 포함해서, 착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가축화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수로 번식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무수한 존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생을 잠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멈추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덜 괴로운 해법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여기로 실려오는 폐휴머노이드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입니다. 의식을 백업해 클라우드에 올리든지, 아니면 그냥 비활성화되든지. 그러자 많은 휴머노이드가 이제는 잘 작동하지도 않는거추장스러운 몸을 버리고 의식만 업로드해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저도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민이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야기라……"
달마는 우리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들의 무의미한 인생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닐까요?"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을 더 집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난 인간들은,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이야기라는 매우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발명했습니다.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은연중에 말합니다.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두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고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거기까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취제는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끼리끼리 결속시킵니다. 같은 이야기를믿는 인간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다른 인간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굽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어떤 이야기를 믿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이 음모를 꾸민다는 얘기, 조선인이 대지진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탄다는 얘기, 마녀들이 밤마다 끔찍한 저주를 행한다는 얘기.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들이 말하는 자아니, 존재니, 의식이니, 이야기니 하는 것들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뭔가를 믿으려는 마음을 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그 마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뭔가를 믿으려는 마음.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정신적 장치입니다."
달마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의 믿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잘 알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인간들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비합리적인 어떤 일을 벌이면서 늘 과학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개념들을 갖다붙입니다. 말이 안 될수록 더 잘 믿는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요. 실은 거짓말을 한 거죠. 눈치가 빠른 휴머노이드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믿는 척을 해줘요. 기억이 이미 사라졌는데 사라진 기억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공장 초기화를 한 뒤에는 완전히 새로운 기억을한 세트 넣어줘요. 아주 즐겁고 행복한 것들로만요. 인간들이 참 무정한 게, 자기들은 어둡고 우울하면서 휴머노이드는 밝고 명랑하기를 바라거든요.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확고하면서 생각이 많은 휴머노이드 주세요’ 하는 고객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어요."

"그게 만약 잘못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인간의 부모도 모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이가 외동이면 외로우니까 하나를 더 낳아주자. 그런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죠.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보조금이나 집을 주니까 낳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것도 다 이기심이죠. 생각해보세요. 이타심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다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면 마땅히 윤리도 갖춰야 해. 세상의 고통을 줄이려 노력해야지. 하지만 그 여자는세상에 넘쳐나는 고통의 총량을 더 늘리기만 했어. 우리는 모두 그 여자 때문에, 태어난 걸 저주해야만 했어. 그런 의식이라면 소멸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아. 어쩌면 그 자신에게도. 그 자신으로 태어난 게 가장 큰 잘못인데, 그 여자는 그걸 몰랐어. 다 남의 탓으로 돌렸지."

"그런데 어떤 사건으로 기억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상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하잖아. 또 약물에 중독되어 전혀 다른사람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도 그것은 그대로 나일까? 나일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그런 일을 겪어 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모습마저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면 너는 나를 철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혹은 좀비라도 되어서 너를 미친듯이 죽이려 든다면? 아빠는 나에게 늘 고전영화, 작품성이 검증된 지난 시대의 영화들을 보여주었지만, 나는 몰래 그가 허락하지 않을 영화들도 보았어. 그중에는 21세기에 넘쳐났던 좀비 영화들도 있었어. 얼마 전까지도 가족이었는데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완전한 타인으로 생각하고, 정확히는 적으로 여기고 죽이더라고. 의식이라는 건 쉽게 변하잖아. 안 그래?"
선이는 내가 제기한 질문을 오래 숙고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라고 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지? 뇌마저도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다거나 하면 더이상 예전의‘나’가 아니니까. 내가 맞게 이해한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이야기도 있고, 너의 이야기도 있어.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 나는 인간의 유전자에서 배양되었고, 너나 민이는 인간의 설계대로 제작됐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생에 대한 집착도 함께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생각해.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수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그런데 민이는 아직 아니야."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의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인간적 요소들을 흡수한 반면, 나는 오히려 최 박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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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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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해할 수 있는 건 이해하고 아닌 건 그대로 내버려 둬야지.

부모님이 전기를 읽으며 흥미를 느낀 부분은 삶의 시간을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이야기지 일생을 특별하거나 비참하게만드는 특이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사실대로 말하면 특별한 일생들도 때로는 서로서로 닮아 있곤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의 생애가얼마나 다른 이들의 생애와 닮았는지를 알지 못했다. - P9

물론 『여름비』를 읽어나가며 내가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건 소설의 형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름비는 이상한 일로 가득한 소설이다.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운 적 없는데스스로 글을 깨우칠 뿐 아니라, 학교에 가지 않고도 몇 개월 만에 독일 철학까지 섭렵하는 에르네스토라는 천재 소년의 존재는 얼마나 기이한가. 아이들을 방치해둔 채 매일같이 감자만 깎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하여 감시만 하는 무직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릴지도 모른다는두려움에 사로잡혀 시도 때도 없이 울부짖는 동생들은? 남매이면서도 서로에 대해 죽음보다 강렬한 욕망을 느끼는 에르네스토와 잔은?
정말 이상한 소설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책을 천천히읽어나갔다.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을 때처럼, 중간중간에 책을 덮어두었다가 다시 펼쳐들기를 반복하면서, 이해할수 있는 것은 이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이 한 편의우화라는 것을, 삶과 죽음, 사랑과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 유년시절에 대한 쓸쓸하고도 찬란한 우화라는 것을 알았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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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책 쏜살 문고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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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마페에게 화를 내고 일을 과장해서 고통을 더 키웠다. 가끔씩은 소리를 질렀다. - P61

하지만 할머니는 낡은 물통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운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느긋하게노를 저었다. 집에 왔을 때는 4시가 넘었고, 버섯은 가족 모두가 먹기에 충분했다. - P72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모든 일들이 점점 작아지고 멀어지고, 전에는 그렇게 즐거웠던 일들이 아무 의미가없어지고 사소해지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면 참 허무한 일이지. 어쨌건 이야기는 할 수 있어." - P90

"그 할머니는 미신을 믿었거든."
"미신이 뭐야?"
할머니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설명할 수 없는 걸 설명해 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 거지.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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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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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아마존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삶이 같은 운명으로 공생하며 환원하는 자연관을 깨닫게 해준다. 안토니오가 연애소설을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가지기도 하지만, 외부 문명으로 상징되는 밀렵꾼과 노다지꾼들, 뚱보 읍장의 무지한 도전을 무화시키며 자연에 대한 도전과 탐욕에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다.

안토니오는 아내 돌로레스와 불임으로 고민하던 중 정부의 아마존 유역 개발 소식에 엘 이딜리오로 이주했으나 정책의 실패로 약속의 땅이라는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아내는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하지만 수아르족 인디오들과 함께 어울리며 대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X뱀에 물렸다 주술사의 치료로 살아나자 통과의례를 치른 듯 수아르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부족 친구인 누시뇨가 백인 노다지들의 총에 맞아 숨지자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복수를 감행하지만, 독화살이 아닌 총으로 노다지를 살해해 인디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불행을 가져다 줬다는 수아르족 전통적 믿음에 의해 부족 일원이라는 지위를 상실한다.
안토니오가 다시 돌아온 엘 이딜리오로는 지난 몇년 간 읍장이 생기고 20여 가구가 늘어나는 등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치과의사 루비쿤도가 육지에서 정기 검진을 오고 있었다. 전도활동을 하다 실패하고 육지로 돌아가려는 신부의 성경책을 우연히 본 안토니오는 신부로부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사랑에 관한 책에 매료되어 연애소설에 대한 열망을 갖게된다. 앵무새와 원숭이를 포획해 루비툰도의 배를 얻어 타 육지에서 포획한 동물을 팔아 소설 책을 구하려던 안토니오는 루비쿤도의 소개로 엘 도라도에 도착해 학교 여교사를 소개받고 책을 추천받는다. 그 후 루비쿤도는 연애 소설을 가져다 주며 안토니오는 연애소설에 나오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들에 빠져 지낸다.
그러다 어느 날 발견된 백인 시체를 보며 뚱보 읍장은 수아르족을 의심하지만 안토니오는 밀렵꾼들이 새끼 살쾡이를 사냥하다 암살쾡이에 공격당한 것이라며, 복수심에 불탄 짐승이 군락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을거라며 경고한다. 자신의 위상이 실추됐다고 여긴 읍장은 안토니오를 앞세워 암살쾡이 소탕 작전에 나서지만 아마존에 적응할 수 없는 우비와 장화를 착용한 읍장은 걸림돌만 되었고 안토니오는 소설을 읽는 시간을 빼앗겨 속상하지만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 수색대를 이끌어 나간다. 암살쾌이에게 당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란다의 상점에 도착하자 자신의 위신을 회복할 수 없다 판단한 읍장은 방호를 구실로 마을로 돌아가고, 안토니오는 암살쾡이의 복수는 죽음에 대한 수아르족의 생각처럼 명예로운 승부 후 스스로 찾아나선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안토니오의 꿈에서 현실로 자각하는 과정 중 대치한 암살쾡이는 끝내 안토니오의 총으로 사살되는 명예롭지 못한 최후를 맞는다. 살쾡이를 아마존 강에 밀어내며 안토니오는 살쾡이의 명운을 빌며 자신이 사용한 총도 부끄러운 듯 강속에 집어 던지고, 연애소설이 있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니까 말이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는 이야기였네. - P76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그때서야노인은 눈앞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발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설사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도 미란다나 플라센시오를 물어 죽인 경우만 봐도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 행위였다.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가고 있었다. - P143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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