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원도 - 《구의 증명》이 있기 전 《원도》가 있었다!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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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경험은 쉽게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판단의 기준이 되기 쉽고,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평생 ‘삶을 통째로 지배’(144p.)당하고 만다.
원도의 아버지는 원도 앞에서 약을 탄 물을 먹고 자살했다. 어머니의 재혼 이후 새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아원에서 위탁받았던 같은 반 친구 장민석과 경쟁에서 늘 열패감을 느꼈던 원도의 기억은 그의 어린 시절을 불화만 가득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성인이 돼 다시 만난 장민석이 원도가 가졌던 장민석에 대한 열등감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수치심이 몰려와 장민석을 죽여버린다.(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전개상 원도가 장민석을 죽인 듯하다.)
원도는 은행을 다니며 공금을 횡령해 자산가가 되지만 퇴직 후 횡령이 드러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도피생활을 한다. 허름한 여관에 들러 자살을 시도하는 원도는 여관주인에게 발각돼 쫓겨나면서 자신은 왜 죽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자문한다. 평생 자신의 살아 있는 이유의 답을 찾지 못하는 원도는 새아버지 친구인 치료사에게 자신의 실제 아버지는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새아버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누가 자신의 친아버지인지 끝내 답하지 않는 엄마는 노년이 되어 장민석의 이름도 잘 기억 못하고, 원도는 죽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아버지를 믿으라’는 이야기만 계속 되뇌인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 P11

하나하나 옳은 말이라서 딱히 새겨들을 말이 없었다.
그것운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는, 분명 옳은, 모두의 말이었다. - P13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온 사람의 형편을 까다롭게 따지고 심사하다 보면 때론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 P20

쓰레기통에 그득 쌓인 종이 쪼가리와 돈이 다를 것 없어 보였고, 늦가을 길바닥에 나뒹구는 노란 은행잎을 보 면서도 저것과 돈이 뭐가 다른가 생각했다. 때가 되면 차고 넘치는 것. 의미를 잃으면 쓰레기에 불과한 것. - P20

초반엔 실패도 했다. 실패의 원인은 신중함에 있다고 원도는 생각했다.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야 했 다. 치밀한 셈보다 과감함이 필요했다. 망설이지 않아야 했다. 셈과 판단은 순식간에 이루어져야 했고, 이성보 다 감각을 믿어야 했다. - P21

생각은 무계가 없다. 유령처럼 존재하는 그것은 유령처럼 사람을 흘린다.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들릴 듯 들 리지 않는 숨소리.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림자, - P24

완도를 비롯한 남자들은 자기 아닌 모든 것에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내심 상대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 발적으로 자존심을 다치거나 열등감을 느꼈다. - P26

단 하루도 거를 수 없는 경쟁 속에서 원도는 점점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무엇에 관해서건 평가를 하 고 단점을 찾고 트집부터 잡아야만 손해 보지 않는 기분이었다. 일단 반대하고 거부하여 상대의 마음을 조인 뒤 내키지는 않지만 인정하고 수락한다는 포즈를 취하는 데 익숙해졌다. 얕보이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고 믿 었고, 그 믿음은 원도의 성격을 형성했다. - P29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며, 그 후 에는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고, 그 이치를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성 숙과 성장이 완성된다고들 했다. 하지만 원도는 어른보다, 성숙보다, 성장보다 원하는 그것을 갖고 싶었다. 그 것 아닌 다른 것은 원치 않았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하늘의 뜻 따위로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것이 경쟁이라면, 그것을 굳이 경쟁이라고 부를 이유가 있는가 생각했다.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한 뒤 기다리는 것이 고작 하늘의 뜻이어야 하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모든 것을 통째로 운에 맡겨 제비뽑기나 사다리 타기 로 승패를 가르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운이라는, 혹은 우연이라는 여백을 전제하 는, 경쟁의 상황도 조건도 천차만별인, 그래서 그다지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공정하다 믿고, 믿으라고 강요하 는 것 아닌가. - P29

어른 원도는 누구보다 경쟁의 물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용할 줄 알았다. 경쟁에 깃든 우연이란 함정을 원망하 기보다 그것을 최대한 기다리고 활용하여 자기 몫을 챙겼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만 경쟁하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는 원도에게 결코 이롭지 않았다. 빈틈과 불합리와 부조리가 있는 곳에 승산도 있었다. - P30

자살은 죽음의 형식일 뿐 내용이 아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 P39

선택을 너무 오래 미루면 결국 누구도 원치 않는 최악의 선택이 나를 선택하게 마련이지. 후회해봤자 소용없 어. 시간을 되돌릴 순 없잖아. - P41

착각하지 마. 우리는 선택하지 않아. 선택당하지. - P41

아무리 불품없고 비천한 것이라도, 그런 입장과 역할이라도, 장민석이 가지는 순간 그것은 무엇보다 좋고 담 나는 것이 되었다. - P49

유경은 잘못을 지적하려고 원도 곁을 지키는 사람처럼 굴었다. 당구 채로, 이해한다는 말로, 몇 대 맞을래라는 말로 원도의 오류와 책임을 지적하면서 원도 아닌 다른 존재를 요구하는 선생이나 부모처럼, 유경은 사랑이라 는 말을 방패 삼아 있는 그대로의 원도를 부정했다. - P55

나는 고장 난 게 아니라 원래 이런 인간이라고, 원도는 생각했다. 원래 이런 인간인데 유경은 나를 고장 난 인 간 취급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 P55

앞으로 잘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드물었으며, 그 말을 따르더라도 ‘잘해보는 것‘의 정의는 그야말 로 제각각이었으니 결국 하나 마나 한 말이었다. - P58

무조건적으로 돈이 되니까 그런 겁니다. 사랑 싫어하는 사람 없죠. 돈 싫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그것을 원합니다. 김태경 씨. - P68

산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어서 자식을 누구보다 반듯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그래서 친아버 지 이상으로 애쓴다고 원도는 생각했다. 하지만 ‘친아버지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라는 생각 자체가 이 미산 아버지를 친아버지와는 거리가 먼 아버지로 만들어버렸다고 - P80

하지만 자유를 생각하지 않는 존재에게 자유는 불필요하다. 자유를 생각하는 존재에게 자유는 불가능하다. 그 러므로 자유는 없다. 자유분 아니다. 평등, 평화, 공정, 정의 등 사람이라면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것 모두 마 찬가지다. 각자의 마음에 존재하는 그것에 대한 정의는 지문과 같다. 같을 수 없다. - P82

자신의 오해에 대해, 아무도 밝히려 하지 않았던 진실, 흰히 드러나 있기에 밝힐 필요가 없었던 진실, 모두가 알고 원도만 모르는데 원도만 모른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진실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오해하고 착각하 는 삶이 나았다. 간단명료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결론을 내리기 두려웠다. - P86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질문을 제거해버리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 P89

너는 외동이어서 모르겠지만 엄마의 사랑은 형제와도 나눌 수 없는 거야. 생존 문제니까. 대부분 내가 더 사랑 을 많이 받았다, 혹은 내가 더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공평하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 어. 그런데 형제도 아닌 너와 나라면 말이지. - P90

아르바이트생들 푼돈이나 벗어 돈을 모으니까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거라고 원도는 생각했다. 푼돈이나 벗어 봤자 재산은 겨우 그 정도 불어날 뿐이다. 1만큼 벗으면 1만큼 얻고 10만큼 벗으면 10만큼 얻는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10만큼 가진 자를 공략해야 한다. 하지만 사장 주변에는 1만큼 가진 자분이었다. 사장 역시 3정 도 가진 자에 불과했다. 10을 가진 자는 사장이나 원도 주변에 없었다. - P95

잘 사는 기준은 타인의 시선과 인정으로 만들어졌다. - P116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아니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이다. - P120

나는 지금 소통의 불가능을 믿는다. 타인의 몰이해를 믿는다. 그 믿음이 나의 입구며 출구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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