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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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탐구와 문학적 글쓰기를 훌륭히 결합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데 내 생각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글쓰기가 아닌가 싶다.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인지 개인의 풍부한 감수성을 표현하고자 한 목적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글쓰기는 나같은 독자에겐 집중력을 떨어뜨리기엔 최적의 조건이었고, 게다가 도판 하나 없는 불친절한 생물학책이라니 너무 끔찍했다.

생물학에 조예가 깊은 과학자들에겐 문학적 감성이 가미된 수준 높은 작품일지 모르겠으나, 일반인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최악인 교양인문서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고? 숲의 생물 다양성이 봄에 만발하는 것을 보자고 목재와 종이 수요를 억제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꽃의 운 명은 꽃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태계 교란은 자연스러운 일 아니 냐고? ‘자연의 균형‘이라는 낡은 상투어는 수십 년 전에 한물갔다.
이제 숲은 바람과 불, 인간에게 끊임없이 공격받고 늘 변하는 ‘역동 적계‘로 간주된다. 사실 앞의 물음을 이렇게 거꾸로 되물을 수도 있 다. 예전에는 산불이 숲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역할을 했는데 지난
100년 가까이 인위적으로 산불을 억제했으니 산불 대신 개벌을 해 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학술 회의와 정부 보고서, 신문 사설이 논란으로 들끓는 것은 이 런 까닭이다. 숲에는 윙윙거리는 전기톱이 필요한가, 아니면 벌목꾼 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재생될 시간이 필요한가? 우리는 자연을 하나 의 모형으로 상정하고 싶어 하지만, 자연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무궁 무진하다. 여러분은 숲의 생명 순환을 어떤 측면에서 보고 싶어 하 는가? 빙하기의 가공할 파괴력? 때문지 않은 태고의 산림? 숲을 뒤 집어엎는 태풍의 위력?
늘 그렇듯 자연은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오허려 우리는 이러한 도덕적 물음을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자 연의 어떤 부분을 모방하고 싶은가? 빙상*의 압도적이고 무지막지 한 무게를 꿈꾸는가? 얼음 왕국의 아름다움을 땅에 덮어씌웠다가.
숲이 천천히 재생되도록 10만 년마다 빙하를 물러나게 하고 싶은가?
아니면 불과 바람처럼 살고 싶은가? 임의의 간격으로 임의의 장소에 서 일정 시간 동안 기계로 풀과 나무를 베어내고 싶은가? 우리에게 는 숲이 얼마나 필요한가? 우리는 얼마나 원하는가?
이것은 시간과 크기의 문제다. 개별을 20년마다 할 수도 있고
200년마다 할 수도 있다. 벌목을 한곳에 집중할 수도 있고 전체적 으로 분산할 수도 있다. 숲을 완전히 발가벗길 수도 있고 나무 몇 그루만 제거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집단으로서 이 물음에 대해 내놓는 대답은 수많은 망주 인이 소유한 가치에서 비롯한다. 이 가치를 가지치기(정리하고 가치 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두 서툰 관리자인 경치와 정부정책이다. 숲은 소유권 경계선을 따라 깨진 유리창처럼 불규칙하게 나뉘어 있다. 그래서 지역마다 숲의 가치가 제각각이다. 이렇듯 혼란 스러운 상황이지만, 전체를 조망하면 패턴이 드러난다. 인류는 빙하 기도 아니요 폭풍도 아닌 전혀 새로운 무엇이다. 우리는 빙하기의 규 모로 숲을 바꿨으되 수천 배 빠른 속도로 바꾸었다.
19세기에 베어낸 나무의 양은 빙하기 10만 년 동안 죽어간 양보 다 많았다. 우리는 도끼와 톱으로 숲을 난도질하여 노새와 화차로 실어 날랐다. 헐벗었다가 다시 푸르러진 숲은 크기가 줄어들었으며 난도질의 여파로 생물 다양성이 줄었다. 이것은 빙하기 규모의 폭풍 이었으나 노골적인 물리적 교란으로 따지면 태풍과 맞먹었다. - P101

그런데 이 비유는 앞뒤가 바뀌었다. 자연이 노장사 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노장사상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무는 도를 따른다‘가 아니라 ‘도는 나무 의 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 P147

수컷 모기와 알을 품지 않은 암컷은 벌이나 나비처럼 꽃에서 꿀을 빨거나 썩어가는 과일에 서 단물을 빨아 먹는다. 피는 산모만을 위한 단백질 보충제다. - P161

코요테는 늑대 같은 최상위 포식자와 달리 개체 수가 많아서 박멸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났듯, 또한 미국 정부 의 육식동물 개체 수 억제 정책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듯, 왕을 죽이 는 것은 쉽지만 상류층을 몰아내는 것은 어렵다. - P218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인 류는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인류 의 창의성과 놀이 본능 또한 사랑해야 한다. 인간의 인공물이 남아 있다고 해서 자연이 아름답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 론 우리는 덜 탐욕스럽고 덜 어지르고 덜 낭비하고 덜 근시안적이어 야 한다. 하지만 책임감을 자기 혐오로 바꾸지는 말자. 우리의 가장 큰 실패는 세상에 대한 연민을 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 P225

이 매혹을 설명하려고 나중에 언어를 동원하기는 하지만, 매혹의 과정은 이성의 차원 아래에서, 언어의 층위 밑에서 먼저 일어난다. - P279

이색형 색각자의 뛰어난 패턴 인식 능력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불 운한 돌연변이의 하찮은 기쯤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렇지 않다는 증거가 두 가지 있다. 첫째, 인간에게서 이색형 색각자 의 빈도는 남성의 경우 이색형 색각은 남성 성 염색체의 유전적 변 화 때문에 생긴다- 2대 8로, 부적응 사례로 보기에는 너무 높다. 이 색형 색각이 이토록 흔하다는 것은 진화가 특정 상황에서 이 조건을 선호함을 암시한다. 둘째, 우리의 사촌인 원숭이, 특히 신세계원숭이 도 이색형 색각과 삼색형 색각이 한 종에 공존한다. 이 종은 이색형 색각이 전체 개체의 절반 이상인데, 이 또한 이색형 색각이 우연한 결함이 아님을 암시한다. 실험실에서 마모셋원숭이를 관찰했더니 이 색형 색각은 어두운 곳에서 삼색형 색각보다 유리했다. 삼색형 색각 이 놓친 패턴과 질감을 보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밝은 곳에서는 상황이 역전되어, 삼색형 색각은 잘 익은 빨간색 열매를 이색형 색각 보다 빨리 찾는다. 이렇듯 원숭이의 시각 체계가 다양한 것은 숲의 빛 조건이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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