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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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며칠 간 정말 쓸데없는 문제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정신차리라고 진정한 고민거리를 던져준 책이다.

"저는 농인 부모님의 세상이 견고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그 사회가 항상 밝고 아름답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실제로 농인이 농인을 대상으로 범죄와 사기 행위를 벌이기도 하고, 계모임을 하다 도망치는 일도 벌어지죠. 누군가를 대상화하여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 건 또 하나의 선입견이 아닐까요? 착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런 통념 말이에요." - P33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보스턴 남부에 있는 섬 마서스비니어드에는 유전적으로 청각장애인이 많았다. 19세기미국 전체 인구의 청각장애인 비율과 비교해 100배 높았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보면 저주받은 섬 같겠지만 섬사람들은 들리지 않음을 장애로 생각하지 않았다. - P40

고민에 빠진다. 당연히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가는 것과 그의 자녀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에이블리즘"과 오디즘 이 만연한 사회에서 나와 부모는 수용되고 포용되기보다 차별받고 거절당한 경험이 더 많다.
그러나 어려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모두의 인생이 그렇듯 기쁘고 가슴 벅찰 때도 있고 화가 나고 속상할 때도 있다. 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끄덕이며 눈물을 흘리거나 쯧쯧 하고 혀를 찬다. 그 순간 나와부모의 삶은 대상화된다. 그저 불쌍하기만 한 건 아닌데 ‘불쌍한 사람‘이 된다. 자기 삶의 서사를 구축하는 주체성을 잃어버린다. - P43

한번 멈춰섰다. 신경학적인 장애로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건누군가에게는 상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본값이다. 상실로인한 슬픔과 안타까움은 비장애인 중심의 관점일 수도 있다. - P47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고통과 ‘원치 않는‘ 순간들에 대한 소유권을 쥐고 스스로의 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 P49

재일조선인 저술가이자 작가로서 디아스포라에 대한 질문을 던져온 서경식은 다나카 가쓰히코의 논의를 빌려 모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익혀 자신의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말이며 한번 익히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근원의 말"이고, 모국어란 자신이 국민으로서 속해 있는 국가인 모국의 국어라고 정의한다. 모국어는 "근대 국민국가에서 국가가 교육과미디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가르쳐 국민으로 만드는 장치로기능"하며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는 경우는 국가 내부의 언어 다수자들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어느 곳이든 모어와모국어를 달리하는 언어적 소수자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일본사회에서는 재일조선인이, 한국사회에서는 언어적 소수자인한국 농인이 그에 해당한다. - P57

BTS의 수어 안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스스로를 수어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몇몇 청인이 매체를 통해 수어안무에 대해 잘못 설명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수어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양산할 뿐 아니라 청인이 수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가로채는 행위다. 보다 못한 몇몇 농인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관리자에 의해 모든 댓글이 지워졌다. 언어적 소수자의의견이 다수자에 의해 묵살당하는 일이었다. 농인은 수어가 주목받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타자화되고 주변화된다. - P58

나의 부모는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건강하다. 우울증을않는 나의 파트너도 건강하다. 장애와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어떤 고통은 사회적인 담론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누가 그것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당신과 나의고통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여기서부터 다시 쓴다. - P75

페미니즘과 장애를 다 떠나서, 이 모든 건 잘 듣고 말하고 보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도, 장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도, 결국 다름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대한 것이다. 당신의 말을 잘 듣지 못해서, 제대로 보지 못해서,
다르게 말하기 어려워서 만들어진 상황은 아닐까. - P82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쌓여 체념적 태도를갖게 되는 건 알겠지만 가끔 당사자는 싸울 의지가 없는데 농인도 아닌 내가 분노하며 항의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하자 코다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농인부모와 달라요. 우린 청인으로 태어나 음성언어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죠. 들을 수있기에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요. 코다는 ‘듣는 권력’을가지고 있는 거예요." - P87

그 자리에 장애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인가해달라며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무릎을 꿇는다. 2017년 9월 강서구서진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설명회에서의 장면이다. 그러나 공진초등학교 폐교를 막기 위해 싸웠던 이들은 특수학교 건립을위해 투쟁하는 장애학생 부모들에게 연대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당한 분리와 차별을 어떻게 보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가양동 일대의 역사적·지역적 맥락을 보여주며 이는 단순한 장애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분리 욕망‘이 투사된 사건이며 계급과 계층을 나누는 구분 짓기의 유구한 역사라는 점을 짚는다. - P89

"가족은 차이를 둘러싼관용과 불관용의 시험대이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이런 과정이 강조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시급한 장소" - P91

"귀하는 장애를 극복하고어려운 역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므로 이상을 드립니다" - P93

정부, 정치가, 기업가 등이 장애인의날을 대중적 이미지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쓰거나 허울뿐인 장애인 복지정책을 내놓는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비판하며, 시혜와 동정의 날이 아닌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알리고 공감대를 확장하는 의미로서 ‘장애인차별철폐의날’로 부르자고 투쟁하는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 투쟁의 역사를 이어온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서야 나는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괴롭지 않은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 P94

"글을 쓰는 일은 재능보다, 성실함보다, ‘용기‘에서비롯된다" - P120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부락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바깥으로부터 온다. - P125

"손가락 하나 까딱해 신용카드로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면 내가 사회운동과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일종의정치적 판타지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사회운동이 가능할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중요한 건 "마주 보고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의견을 교환하는 ‘살아 있는 여성동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자율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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