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 안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50년대를 배경으로 사회적으로 차별과 박해를 받던 유대인과 동성애자 두 주인공의 쓸쓸한 내면의식을 보여준다. 같은 차별과 박해를 받지만 유대인과 동성애자의 연대에는 연결점을 찾을 수는 없기에 서로의 처지를 안쓰러워 하지도, 위로를 얻지도 못하고 침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더욱 처량해지기만 한다.

페라라의 의사이자 동성애자인 파디가티는 강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볼로냐를 오가는 열차에서 대학생 화자의 무리들인 데릴리에로스, 니노, 비안카와 어울리게 되고, 중년의 나이를 뛰어넘어 친구가 된 그들 중 빼어난 외모를 가진 델릴리에르스와 동성관계를 가진다. 화자의 가족들이 리초네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파디가티와 델릴리에르스도 같은 장소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고, 그들의 ‘볼썽사나운 소문’이 점차 퍼져나가던 중, 델리리에로스가 파디가티와의 언쟁 중 폭력을 휘두르고 파디가티의 모든 짐을 훔쳐 달아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휴가를 마치고 페라라로 돌아온 화자의 가족들은 ‘인종법’시행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점차 붉어져 불안해진다. 그러던 중 화자는 니노를 만나 델릴리오스가 돈 많은 게이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다는 소문과 인종법에 대해 비난하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만 결국 자신은 이탈리아의 유서 있는 문중이라며 문화담당관일을 제안받은 것을 자랑하며 화자의 처지를 비참하게 만든다.
화자와 우연히 만난 파디가티는 성정체성에 관한 소문으로 병원에서 해고되었고 불결한 유대인인 화자와 동성애자 파디가티는 주인을 잃은 개와 함께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동종의식을 공유한 채 페라라 거리를 걷는다. 파디가티와 화자는 점심약속을 잡지만 서로 당일에 연락을 하지 않았고, 얼마 뒤 화자는 신문에서 파디가티의 자살 단신을 본다.

중간에 작가 본인이 유대인 차별과 학살을 자행한 극단의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조금 더 소설의 심연에 빠져들 수 있었다. 화자는 아버지가 고위 공직자에게 들은 인종법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에도 오히려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고독감이 바로 그 순간 한층 더 심해졌다’(142p.)는 불안과 절망의 심리상태를 보인다. 그러던 중 발견한 파디가티의 자살 소식으로 소설은 끝나고, 파디가티 자살이라는 결말은 화자의 미래도 (역사적 사실대로) 어두워 보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배경이 적막하고 쓸쓿한 감성을 더 증폭시키는 것 같았다.

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 ‘내버려두는 것’과 같았다 - P20

그는 울화통을 터뜨리듯 기묘한 외침으로 말을 마쳤다. 마치 마지막에 델릴리에르스가 훔쳐간 물건의 목록을 열거하는것이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더 강력한 자부심과 쾌감으로 바꿔놓기라도 하는 것처럼. - P98

그러고는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해. 최***...
근 너와 네 가족을 자주 떠올렸거든. 정말이야. 하지만 내가훈수를 좀 둬도 된다면, 만약 내가 네 입장이라면…
"뭘 해야 하지요?" 나는 맹렬하게 그의 말을 막았다. "내가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순응하는 것?"
"나로서는 네가 왜 그러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봐, 내 소중한 친구,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게 훨씬 더 인간다운 거야(그렇지 않았다면, 넌 여기 나와 같이 있지도 않았을 테지!). 왜 거부하고, 왜 맞서야 하지? 내 경우는 너랑 완전히 달라. 지난여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난 스스로 견딜 수가 없었어. 더는 용납할 수 없었고, 해서도 안 되었지. 어떤 때는 거울 앞에서 수염을 깎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다면 믿을 수 있겠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옷을 다르게 입는 것이었어! 하지만 이 모자.…… 이 외투..…… 내 분신이나 다름없는 이 안경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있겠어? 그런데도 이렇게입는 것이 너무 우스꽝스럽고 기괴하고 터무니없게 여겨지는거야! 오, 그래, 온 곳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이 상황을 말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할 순 없어.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 P124

아버지의 기쁨은 부당하게 쫓겨났다가 선생님의 복귀 명령을 받고 교실로 돌아온 학생의 기쁨과 같았다. 삭막한 복도에영영 추방되어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갑작스럽게 친구들이있는 교실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된 그 학생은, 벌칙을 면했을뿐 아니라 아무 잘못이 없음을 인정받고 완전히 명예를 회복했다고 기뻐한다. 결국 아버지가 그 아이처럼 기뻐하는 것이옳지 못한 걸까? 나에겐 그렇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고독감이 바로 그 순간 한층 더 심해졌다.
총체적이며 결정적이었다. 나는 나의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 P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