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세기가 흐른 다음에 어느 정도 추하게 변모했는가는 마키아벨리의 예로 쉽게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결코 악령도 악마도 아니었고, 비열하고 천한 저술가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사실이었고 16세기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19세기의 도덕관에 비추어 보면 그는 추악했다. 정의와 사실, 이 두 개의 투쟁은 사회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이 싸움을 멈추게 하고 순수한 관념과 인간의 현실을 잘 융합해서 정의를 사실 속에, 사실을 정의 속에 평화롭게 스며들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명한 인간이 할 일인 것이다. - P14
제1의 명제, 부의 생산 제2의 명제,부의 분배 제1의 명제에는 노동 문제가 포함된다. 제2의 명제에는 임금 문제가 내포된다. 제1의 명제에서는 노동의 사용 방법이 문제된다. 제2의 명제에서는 수익의 분배 방법이 문제된다. 노동을 바르게 사용해야 국민의 힘이 생긴다. 수익을 바르게 분배해야 개인의 행복이 생긴다. - P33
‘연민은 헝가리 병사가 아니다!‘ 같은 말이 있다. 그러나 코제트는 북을 사랑이라고 깨닫기에는 너무 일찍 수도원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기가 걸린 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해서 그만큼 병이 가볍다고 말할 수 있을까? - P118
그렇다면 혐오할 대상에 대한 연구가 금지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의사가 병을 멀리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박물학자가 살무사며, 박쥐며, 전갈이며, 지네며, 독거미에 대한 연구를 거부한 채 "아, 이건 정말 하기 싫군!" 하고 그것들을 어둠 속에 던져 버리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사상가가 은어를 피하는 것은 외과의사가 종기나 사마귀를 피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언어의 어떤 사실을 조사하는 것을 망설이는 언어학자에게도, 인류의 어떤 사실을 탐색하기 망설이는 철학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은어란 전체적으로 문학상의 한 현상이며 사회상의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은어란 다시 말하자면 슬픔과 끔찍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 P240
은어, 그것은 그대로 혹사당한 말이다.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이토록 깊은 나락에 빠져 그 깊은 곳에서 참담한 운명의 학대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움직이지 못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슬에 묶인다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아아, 처참한 인간들의 불쌍한 세상이여! - P258
그러나 위슐루 부인은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해주는 것이 왜 자기에게 좋은 일이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분풀이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아라비아 여자처럼 하는 것뿐이었다. 그 아라비아 여자는 남편에게 뺨을 맞고 곧장 아버지에게 가서 복수해 달라고 울며 말했다. "아버지, 남편에게 받은 치욕을 복수해 주세요." 아버지는 말했다. "대체 어느 쪽 뺨을 맞았니?" "왼쪽이에요." 아버지는 딸의 오른쪽 뺨을 때리며 말했다. "자, 이제 남편에게 가서 말해라, 넌 내 딸을 때렸지만 난 네 아내를 때렸다고 말이다." - P418
여든이 넘은 노인에 이어서 바리케이드 위에 등장한 마리우스, 그는 늙은 혁명의 망령 뒤에 등장한 젊은 혁명의 환상이었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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