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수 없었소. 우리 같은 가난뱅이는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죽는답니다." - P21
그는 정계나 권력층에 등장한 사람들 모두 비천한 속물들이라고 말하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또한 여러 신문들을 읽었는데, 그것들을 가리켜 ‘새로운 소식 쪽지들‘ 혹은 ‘자질구레한 소문들‘이라고 말하며 숨이 넘어가도록 웃곤 했다. - P47
이처럼 인간이란 언제나 힘들게 대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루이 14세왕관의 금을 지워 버리고 앙리 4세의 문장을 벗겼다고 해서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이에나 다리에서 N자(나폴레옹의 머리글자_옮긴이)를 지운 보블랑 씨를 우리는 야유한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짓도 그와 같다. 부빈(1214년 필립 오귀스트 왕이 독일 황제 오톤 4세를 무찌른 곳_옮긴이)의 승리는 마렝고의 승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것이다. 백합꽃은 N자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것이다. 그것은우리가 계승해야 할 재산이다. 그것을 지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의 조국이나 과거의 조국이나 똑같이 부인해서는 안 된다. 어째서 역사의 전부를 원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왜 프랑스의 전부를 사랑하지 않는단 말인가? - P83
그는 틀림없이 태평한 놈이지만 재미있는 놈일 거야. 학생으로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군. 품행도 방정하지 못하고, 점수를 따려고 애쓰지도 않고, 과학이니 문학이니 신학이니 철학이니 무턱대고 주워 담아서 그걸 자랑하기나 하는 박식한 풋내기도 아니고, 지나치게 엄하게 뽐내기만 하는 바보 재주꾼도 아닐뿐더러 대학 따위를고마워하는 남자는 아니다. 틀림없이 존경할 만한 게으름뱅이고, 거리를 빈둥거리고 다니든가 교외에 나가 틀어박혀 있거나, 가게에 근무하는 계집에게 반해 있거나, 미인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겠군. 어쩌면 지금쯤 내 여자 집에 숨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지. - P139
어떤 일이든 극단에 이르면 서로 통하는 것을 그는 느끼고, 조심하지않으면 물질적 타락이 정신의 비참함을 초래할 것이라고 단정하여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명심했다. 다른 입장에 처해 있었다면 오히려 당연한예절이라고 보아도 좋을 말씨나 태도도 현재의 그로서는 비굴한 것으로생각되어 애써 굳건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오만으로 보일까 싶어 과도한 언동은 피했다. 그의 얼굴은 엄격한 마음가짐을 나타내어 언제나 붉은 홍조를 띠었다. 마리우스는 자신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이성적인 자세를 취했다. - P173
이 세상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이끼와 풀과 나무가 있어 그것을 관찰할 수 있고, 2절판이나 32절판 같은 책들이 쌓여 있는데, 사람들은 왜 헌법이다, 민주주의다, 정통 왕위 계승권이다. 왕정이다, 공화제다, 하는 턱없는 일로 온 열정을 쏟아 가며 서로를 미워하는지 마뵈프 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 P182
"지금 마리우스의 새 모자와 새 윗도리하고 만났지. 녀석은 속에 들어있던걸. 아마 시험이라도 치러 가는 모양이야. 몹시 멍청한 얼굴을 하고있더라고." - P208
거기서는 나를 잊는 마음도 사라져 버리고 악마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을 위해 산다. 맹목적인 자아가성난 소리를 지르고 뭔가를 찾고 뭔가를 더듬고 뭔가를 갉아먹고 있다. - P232
마리우스는 5년 동안 가난과 빈궁과 고뇌 속에 살아왔지만 자신은 아직 진정한 비참함은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진정한 비극, 그것을 방금 본 것이다. 눈앞을 지나간 그 아귀 같은 여자가 바로 그것이다. 남자가 겪는 궁핍을 본 이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여자가 겪는 궁핍을 보아야 한다. 여자가 겪는 궁핍만을 본 이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어린아이의 궁핍을 보아야 한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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