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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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는 한국사회에서 낭만이자 부의 상징이다. 주거를 고정된 부동산의 의미에서 그 이상으로 확장시키지 못한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캠핑카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요트나 배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하게 형성된 주거문화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디지털노마드라는 용어가 구속되지 않고 방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처럼 미화되어 등장한 것이 200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한다. 그때가 마침 이 책에서 얘기하는 ‘방황으로 내몰림’이 생겨난 금융위기 때이니 어쩌면 디지털노마드는 주거 난민들이 발생한 사회문제를 하나의 트렌드로 미화시키려한 미국 언론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종신고용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설계자들의 신종 가스라이팅 말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대응기제이며, 사실상 하나의 국가적인 오락이다.’(271p.)

린다 메이는 건축공학을 수료하고 준학사학위를 받았지만 관련 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힘들었다. 90년대 초에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여러 가지 일자리를 전전긍긍하며 홈디포에서도 일하고, 카지노에서도 일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더 이상 자신을 고용해주는 기업을 찾기 힘들었고, 자식이나 손주들의 사정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좁은 집에서 여러 가족이 사는 것에 눈치가 보인 린다 메이는 어스십이라는 자급자족 가능한 주거형태를 알아보았고, 어스십을 만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일시적으로 노마드의 삶을 시작한다.
‘워캠퍼’는 린다와 같이 캠핑카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계절성 일자리나 임시직을 찾아 전국을 유랑하는 노동자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린다가 워캠퍼가 되어 임시직으로 찾아다닌 일자리는 계절성 일자리인 캠핑 관리인이나, 아마존의 캠퍼포스 같이 적은 수입에 고된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아마존에서는 무료로 진통제를 지급하는 자판기까지 구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캠핑장에서는 매해 상황에 따라 손쉽게 관리인 수를 조정하는 등 힘들고 불안한 일자리를 전전하지만, 이런 워캠퍼들에게 비참한 시선을 던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CheapLiving.com는 워캠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로 한때 소프트웨어 회사의 임원이었다가 금융위기로 몰락한 밥 웰스가 창시했다.

‘오래지 않아, 밥은 자신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보고는, 잃어버린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반대로 자기 삶에서 이제는 없어진 것들-구체적으로는 집세와 전기, 가스, 수도요금-을 떠올리자 아찔할 정도로 행복했다’(124p.)

구조적으로 내몰린 하우스리스이지만 살아보니 그동안 삶을 너무 의미 없는 소유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현재 삶을 받아들이며 만족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불행과 가난은 결핍과 부족이 아니라 시선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이들도 좀 더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존엄성을 지키려고 하는 점도 보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 당신 자신을 홈리스라고, 혹은 다른 어떤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여 부르고 있다면, 그건 큰일이에요.’(329p.)

하우스리스라는 홈리스와는 차별화된 의미로 워캠퍼들이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이들은 은연중에 자신들의 처지가 조금 더 낫다는 의미로 길거리 노숙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노마드 커뮤니티에서 소수인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워캠퍼 생활이 그나마 백인이라는 계층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인종혐오를 실천하는 경찰들에게 흑인이 트레일러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은 강력한 처벌 대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린다는 워캠퍼 생활 끝에 자신이 꿈꾸던 어스십을 실현할 땅을 구매하게 된다. 규제가 느슨한 주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린다의 워캠핑은 진행 중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고발, 차별적 시선에 대한 경고,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의 방식과 노후를 돌아볼 수 있는 르포였다.

임금은 낮고 주거비용은 치솟는 시대에,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자신들을해방시켰다. 그들은 미국을 살아내고 있다. - P14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승부가 조작된 게임에서 지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스템을 뚫을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를 부숴버렸다. 밴과 RV, 트레일러로 이주해 들어가 좋은 날씨를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했고, 계절성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연료 탱크를 채웠다. - P25

엠파이어가 죽어가던 바로 그 시기에, 남쪽으로 1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새롭고 아주 다른 종류의 기업 의존형 마을이 번성하고있었다. 많은 점에서 그곳은 엠파이어의 반대말처럼 느껴졌다. 중산층의 안정을 제공하기보다는, 이 마을은 ‘프레카리아트‘, 즉 낮은 임금을 받고 단기 노동을 하는 임시 노동자에 속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 P81

("업셀링에 능숙해야 합니다." 구인 내역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P87

구체적인 숫자는 없지만, 미국의 유랑 노동자 계층이 주택시장 붕괴 이후 급증했고 계속 증가해왔다고 일화들은 말하고 있다. - P91

아마존 창고에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진통제를 제공하는, 벽에 고정된 자동판매기들이 있었다. - P98

그는 새로운 자기 삶의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을 영화 <매트릭스> 안에서 각성하는 것에, 우리가 살고 있던 즐겁고 예측 가능한 세계가 신기루였고, 잔인한 디스토피아를 감추기 위해 세워진 거짓이었음을 깨닫는 것에 비유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위안으로 삼는 ‘안정감‘이라는 것, 그게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가 덧붙였다. "사실이라고 믿어온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죠.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것은 아주 깊이 박혀있어요. 버리려면 철저히 때려 부숴야 해요." - P100

워캠퍼들은 별다른 교육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며, 계절성 인력을 찾는 고용주들에게는 편리함의 완벽한 본보기다. 그들은 고용주가 필요한 때와 장소에 나타난다. 자기 집을 스스로 가져와서는, 트레일러 주차장을 일이 끝나면 비워지는 단기간의 기업 의존형마을로 바꿔놓는다. 워캠퍼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할 만큼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힘든 업무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교대 근무가 끝나면 너무 피로해 사람들과 어울리지조차 못한다.
그들은 또 수당이나 보장 제도의 형태로 요구하는 것이 적다. 반대로, 내가 워캠퍼들을 취재하기 시작한 첫해에 인터뷰한 50명 이상의노동자 대부분은 자신들의 단기 일자리가 제공하는 안정성 비스름한 무엇에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 P102

나는 아마존 같은 회사가 왜 육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더 적합해 보이는 일에 나이 많은 지원자들을 더 환영하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아주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니까 그렇죠." 조앤이 의견을 제시했다. "우린 뭔가를 하기로 하면 그 일을 해내려고 최선을 다하잖아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쉬지도 않고요." (머리 부상에서 회복하는동안 조앤은 예정된 근무일 중 단 하루만 결근했다. 그날 임금은 지불되지 않았다.) - P103

"저는 이 문제를 절대 ‘은퇴‘의 측면에서는 얘기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이 남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거나 생산적이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을 혐오한다. - P116

어린 시절부터 그가 디딘 땅이 흔들릴 때마다, 그는 무엇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힘겹게 하나하나 배워왔다. - P122

오래지 않아, 밥은 자신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보고는, 잃어버린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반대로 자기 삶에서 이제는 없어진 것들 - 구체적으로는 집세와 전기, 가스, 수도 요금을 떠올리자 아찔할 정도로 행복했다. - P124

"밴으로 들어갔을 때, 사회가 내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고, 흰색 말뚝 울타리를 두른 집에서살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다음엔 삶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이야기가요." 그가 한 인터뷰에서 내게 말했다. "밴에서 사는 동안 전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했습니다." - P125

그들은 사회적 계약에서 자기 몫의 의무를 다했으나 시스템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 P127

하지만 밥의 어조가 항상 그렇게 명랑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방문자와의 좀 더 진지한 대화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당신 말이 맞다고생각해요. 아주, 아주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단순한 삶으로 내몰릴거예요. 제 목표는 그들이 가능한 한 쉽게 변화를 겪어내고, 바라건대결국에는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도록 돕는 거예요. 우리 중 아주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요." - P149

린다는 뭐가 됐든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어려움에 집중하는데 전문가가 되었고,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거대한 문제를 한 입 크기의 덩어리들로 쪼개 분석했던 것이다. - P171

"사람들은 오래 일하는 직원을 원치 않아요. 왜냐하면 그사람들한테는 퇴직금도 줘야 하고, 생활비 상승분도 계속 반영해줘야 하니까요. 그리고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성과급도 달라고 할 테니까요." 애시가 말했다. "새로운 경영자들은 말 그대로 쓰고버릴 수 있는 인력을 원해요. 쓰고 버릴 수 있는 인력을 만들어내려면, 쓰고 버릴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자동화된 거예요." - P179

무엇으로부터 숨어 있는데요? 내가 물었다. 수치스러움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추운 날씨로부터. 그의 대답이었다. - P217

나는 내 사람들을 찾아냈다. 나를 사랑과 환대로 감싸준 부적응자들, 어중이떠중이 한 무리가 그들이다. ‘부적응자‘란 패배자나 낙오자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영리하고 인정 많고 열심히 일하는, 새로운세계에 눈을 뜬 미국인들이었다. 평생 동안 아메리칸드림을 좇은 끝에그들은 그것이 단지 커다란 하나의 사기극에 불과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 - P248

린다는 언젠가, 알코올의존증 환자에게 술을 안 마셨다고 축하하는것은 치질 걸린 카우보이에게 말을 타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고 재치 있게 농담하기도 했다. - P267

다른 이야기들은 그만큼 쾌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열린 길 위에서의 스릴과 동료애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삶을 급진적으로 다시 상상하도록 몰아간 문제들은 회피했다. 어떤면에서, 나는 그 기자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초기 인터뷰에서그렇게 봤었기 때문이다. 기사 하나를 때우려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오후 반나절 정도 있다 가는 기자는 어떤 종류가 됐든 진실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다가가는 일이 거의 없다. 처음으로 워캠퍼들에게 접근했을 때, 내가 마주친 건 유쾌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캠퍼스에서 일하던 한 RV 생활자는 나를만나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자기 동지들과 자신을 위기에 처한 미국인들로 그려내지는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거의 매사에 불평을 늘어놓는 나태한 징징이들, 태만한 사람들, 게으름뱅이들이 많습니다. 그런사람들은 찾기도 쉽죠." 그는 당당하게 적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 P270

나는 그와 비슷한 ‘징징거리지 마‘ 정서를 노마드 대상 격월간 잡지<워캠퍼 뉴스>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마음가짐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헤드라인이 묻고 있었다. 그 아래 딸린 칼럼은 일하면서 생긴 문제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워캠퍼들에게 자기 내면을 돌아봄으로써 해결책을 찾으라고 권유했다. "다음과 같은 생각들로 자신의 고통을 달램으로써 마음가짐을 바꾸고, 낙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한번 봅시다." 글쓴이는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는 여기 영원히 있는 게 아니다. 이 일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여행을 할 것이고, 이 지역을 탐험하며 (또는 가족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낼 것이고,우리가 꿈꾸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격려 연설은 초현실적이었지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결국,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대응 기제이며, 사실상하나의 국가적인 오락이다. 작가인 제임스 로티는 대공황 시기 동안미국을 여행하며 길 위로 내몰린 채 일자리를 찾게 된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1936년 『더 나은 삶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인터뷰 대상자 중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토록 확고부동하게 밝은 태도를 보여준 것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나는 2만 4,00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동안, 환상에 중독된 이 미국적인태도만큼 나를 경악시키고 혐오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도 마주치지 못했다" - P271

숲 한가운데 전기도, 수돗물도, 차도 없이 갇혀 있게 된다면 당신은아마도 그 상황을 ‘악몽‘이라거나 ‘비행기 사고나 그 비슷한 무언가가 일어난 뒤에 벌어진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묘사할 것이다. 하지만 백인들은 그걸 ‘캠핑’이라고 부른다. - P296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길을 나서 운전을 하면서 당신 자신을 홈리스라고, 혹은 다른 어떤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여 부르고 있다면, 그건 큰일이에요. 폴볼스는 『셸터링 스카이』라는 책을 썼는데,그 책에서 ‘관광객‘과 ‘여행자의 차이를 설명했죠." 사미르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저는 여행자예요." 밥 웰스는 자신의 책에서 밴 생활자와홈리스 사이에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는 밴 생활자들은 망가지고타락해가는 사회질서에서 빠져나온 양심 있는 이의 제기자들이라고주장했다. 자의로 선택했건 그러지 않았건,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홈리스인 사람은 밴에 살 수는있지만, 사회의 규칙들이 싫어서 밴에 사는 건 아니에요. 아뇨,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있는데, 그건 그 폭압적인 규칙들 밑으로 다시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서는 쾌적하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니까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 P330

평균 소득을 비교할 때, 상위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의81배를 벌고 있다. 소득 사다리에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약 1억1700만 명에 이르는 성인 미국인의 소득은 1970년대부터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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