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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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은 나이지리아의 부호이자 기독교 광신도이다. 자신의 부로 군사 쿠데타에 맞서 민주적 성향의 신문사를 후원하며, 나이지리아의 토속 신앙을 뿌리 뽑아 기독교를 전파하려 한다. 그의 위치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있지만 가정에선 폭력적인 가장이다.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교도라며 가족들과의 접촉을 일체 금하고, 교리를 지키기 위해 아내 비어트리스에게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다 유산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들 자자와 딸인 캄빌리는 유진이 정해놓은 규율에 벗어나지 않는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하고 성적은 항상 수석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정도를 벗어난 체벌을 당한다.
유진의 고향이자 유진의 아버지 파파은누쿠가 사는 아바에서 가족들은 매년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파파은누쿠는 아직 개종하지 않고 전통적인 신앙을 믿고 있으며, 유진은 이교도에 대한 굳은 거부감 때문에 자신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었을뿐더러, 킴벌리와 자자가 할아버지를 만나는 시간도 분 단위로 제한한다. 반면 유진의 동생이자 대학교수인 이페오마와 그의 사촌 아마카, 오비오라는 파파은누쿠와의 가족적인 유대감을 가지고 지낸다.
아바에서 이페오마의 간곡한 설득 끝에 킴벌리와 자자는 고모와 사촌들과 함께 방학을 보낸다. 이페오마의 집에서 지내며 캄빌리는 아마디 신부를 알게 되고 아버지 유진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는 베네딕트 신부와 비교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아마카의 부에 대한 질투심으로 규율과 복종에 익숙한 생활습관이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이페오마의 도움으로 점점 둘의 우정이 깊어져 간다.
파파은누쿠의 건강이 악화되어 은수카의 이모네로 요양을 오게 되는데, 할아버지와의 접촉이 금지된 캄빌리와 자자는 아버지 유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게 걱정이 되지만, 사촌들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결국 고향 아바에서의 소식통으로 파파은누쿠가 이페오마의 집에서 요양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고, 유진이 분노하여 은수카로 오는 길에 할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신다. 이페디오라는 파파은누쿠의 장례를 전통 방식으로 치르려고 하지만 유진은 기독교식 장례를 강행하고, 캄빌리와 자자는 에누구의 집으로 돌아와 이교도와 함께한 죄를 씻는다는 명분으로 끓는 물을 발에 붓는 벌을 받는다. 또 캄빌리가 이모의 집에서 파파은누쿠의 초상을 몰래 가져온 것이 들통나 유진에게 빼앗기는 과정에서 반항하다 구타를 당해 뇌출혈과 골절상을 입고 입원한다. 아마디신부와 함께 병원을 찾아온 이페디오라는 상황에 경악하며 자자와 캄빌리를 은수카로 데려간다.
유진은 자신이 후원하는 신문사의 편집장 아데 코커가 살해당하고, 쿠데타 정부로부터 살인 위협을 받으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캄빌리와 자자는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된 은수카에서 아마디신부와 고모 가족들과 함께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아버지를 벗어나 자립하려는 의지를 키우고 쿠데타와 학생시위로 교수직을 잃게 된 이페오마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어머니 비어트리스가 유진의 폭행으로 또 유산을 당하고 이페디오라의 집으로 도피해 온다. 이페디오라는 비어트리스와 조카들을 보내고 싶지 않지만 유진의 협박과 현실적인 실리를 따져 결국 비어트리스는 아이들과 함께 에누구로 돌아온다.
에누구로 돌아온 캄빌리와 자자는 더이상 예전 같지 않은 태도로 유진을 대하고, 자자가 영성체를 거부하는 사건이 발단이 되어 유진의 권위는 점점 더 무너져 내린다. 이페디오라가 해고통보를 알려오던 날 자자와 캄빌리는 유진에게 은수카로 간다는 통보를 하고 에누구를 떠나온다. 이페오마의 비자가 발급되고 미국으로 이민 갈 짐을 다 쌀 무렵, 캄빌리와 자자는 집에서 갑작스럽게 유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에누구로 돌아온다. 유진의 장례 미사 전 비어트리스는 캄빌리와 자자에게 자신이 유진의 음식에 약을 타 살해했다고 실토하지만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자자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수하면서 수감이 된다. 비어트리스의 발언은 남편과 사별한 부인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실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시간이 지나 캄빌리와 비어트리스는 출소를 앞 둔 자자를 면회하고, 캄빌리는 사건 이후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비어트리스에게 자자의 출소 후 은수카로 간 뒤 이페디오라와 사촌들이 있는 미국으로 갈 계획이라고 말한다.

나이지리아의 문학을 접한 건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치마만다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과 성평등 의식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관심을 가진 계기가 더 크다.
나이지리아에서 개몽적인 전도사이자,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지식인이며 성공한 자산가 가장의 폭력적인 실상을 보여주지만, 유진의 사회적 명망과 가정에서의 폭력성은 이중적인 인격의 발로가 아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부를 이용해 스스로를 신격화한 자아가 사회와 가정에서 보이는 모습의 결과가 빚어지는 점을 유의해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공과 명망을 가진 사람의 명암인 것이다.
캄빌리와 자자 역시 유진을 이중적이거나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유진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성장기를 거친다. 유진은 어렸을 때부터 통제와 순종에 길들인 캄빌리와 자자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하지만, 캄빌리와 자자는 유진의 여동생 이페오마의 집에서 방학을 보내면서 기존의 질서를 깨는 세계의 방식을 접하게 되고 아버지 유진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겪는다. 에누구의 집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는 못하지만 은수카의 고모집에서 캄빌리와 자자는 사촌들에게 자율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오비오라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며 자자는 독립심을 키워나가고, 아마카의 냉소적이지만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면서 캄빌리 역시 순종적인 자신의 외피를 벗어 던지고 당당함을 키워나간다. 또한 캄빌리는 아마디 신부의 예배 방식과 파파은누쿠가 아침마다 행하던 전통의식 ‘이투은주’를 통해 아버지의 그릇된 광신도적 종교 생활에서 성찰적 종교 생활을 배워나간다는 점에서 일반 성장소설과 차별성을 갖는다.
이 책이 나이지리아 가부장의 가학적인 현실을 고발하려는 소설이 아니듯이, 종교적 색채가 짙은 책 또한 아니다. 성공이라는 빛나는 상징성에 묻은 추악함과 그 속에서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객체들에 대한 응원과 용기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건축가가 성당이 아니라 주거용 건물을 설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처럼 생긴 집이었다. 식당으로이어지는 아치는 제단 입구처럼 보였다. 크림색 전화기가 놓인 벽감은 성체를 받아 먹을 준비가 된 입같았다. - P43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고향에서 보냈다. 버라니카 수녀는 그것을 이보족의 민족 대이동이라고불렀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단어를 혀끝까지 굴려보내는 아일랜드식 악센트로 이렇게 말했다. 왜 수많은 이보족 사람들은 고향에 거대한 저택을 지어서 12월에 일이 주밖에 안 쓰고나머지는 일 년 내내 도시의 좁아터진 집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버라니카 수녀가 왜 굳이 이해하려 하는지의아할 때가 많았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일 뿐인데. - P71

"오빠가 왜 이페디오라랑 사이가 안 좋았는 줄 알아요?" 또다시 들리는 이페오마 고모의 속삭임은 아까보다 더 사납고 시끄러웠다. "이페디오라가 오빠 면전에 대고 자기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에요. 이페디오라는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하지만 오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에 대해서는 꼭 싸우려 들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죽어 가고 있어요, 알겠어요? 죽어 간다고요. 노인네가 사실 날이 얼마나 남았겠어요, 그보? 그런데 오빠는 아버지를 이 집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드리러 가지도 않죠. 오조카!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 P124

"나는 학교에 충성하라고 월급 받는 게 아니야. 내가 진실을말하는 게 결과적으로 불충이 된 거지."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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