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 전에 없던 관계와 감정의 혼란에 대하여
김병수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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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상담했던 사례들을 엮은 책이라 표본이 전부 정신과 싱담을 받을 수 있는 계층에 한정돼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본질을 모르고 고통받는 나에게 자기성찰의 메세지를 주는 부분이 많았다.

"우선 사람은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행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은 성숙한 사람은 없다는 것, 두가지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라는 충고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을 밑바닥까지 겪은 뒤에야 비로소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낙관적 태도는 삶에서 선험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니라 고통 뒤에 얻게 되는 사후적 가치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시험에 대한 불안은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떨쳐버릴 수 있다고, 불안이나 우울 같은 심리적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불안해지는 원인만 없애려 하면 더 문제가 생깁니다. 시험 때문에 불안하다고 시험을 보지않거나 결석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시험 때문에 불안한 것은 시험을 잘 치르고 싶은 마음이크기 때문이지 시험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당장 불안하고 힘들다고 해서 현실에서 도망가버리면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끝내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체성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자아를 통일된 단일체로 인식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 언뜻 보면 모순된 언행들을 하나의 이야기 아래 묶어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정체성은 기억에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기억의 결합체입니다. 기억은 끊임없이 편집됩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에 대한기억을 재구성해서 일관된 이야기로 짜맞추는 무의식적인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 삶의 일관성을회복하려는 논리적 틀인 것이죠.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역사로 만들 줄 아는 힘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고 말했죠.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계속해서 흘러가는 이야기로 허무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놓쳐버린 과거의 꿈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과거와 다르게 살수 있다는 확신일 겁니다.

돈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게 아니잖아요. 타인의 기억 속에 심어놓은 정신적 가치가 진짜 유산이지요.

마흔이 되었다면 모호함을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방법은 딱 하나, 용기입니다. 불안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뭐지?‘라는 질문에 답하며 당장 소중한 것에 집중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안이 내 삶을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불안해도 용감할 수 있습니다. 불안과 용기는 늘 공존하는 법이니까요.

내가 겪는 고통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고통을 통해 나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주는 모든 일은 나를 가르치기 위해 삶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깨달음은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인간은 고통이 찾아왔을 때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고통이 품고 있는 최고의 가치는 숭고한 체험을 촉구하는 데 있습니다.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보니 스트레스에 속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가 스트레스라고 했지만 사실은 콤플렉스가 원인이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것은 성숙을 위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콤플렉스는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입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지하면 그 안에 담긴 정신적 에너지를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콤플렉스는 성취에 필수적인 영감과 욕망의 원천입니다. 정신의 원동력이고 활력을 주는 발전소입니다. 콤플렉스를 회피하지않고 인정하고 의식화하면 그 안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본질은 똑같습니다. 현실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자신이갖고 있지 않다고 인식할 때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가 외부에 있다‘라고 합니다. 사장이 밤새도록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말단 직원이 상사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밤새우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다른 것은, 사장은 자기 의지대로 일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말단 직원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내려놓지도 못했으면서 다 내려놨다고 하는 건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건드리지 마라‘는 방어심리입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세상이 문제라며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하는 겁니다. 내려놓지 못했는데내려놓았다고 믿으면 ‘나는 할 만큼 했는데, 너희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며 복수의 칼을 갈게 됩니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숨기려 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 내가 요즘 우울하구나‘ 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우울한 게 이상하거나 나쁜 감정도 아닌데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다 보니 지치고 상처받아서 우울한 건데 그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힘들었어. 그랬더니내 감정이 나더러 쉬라고 하네‘라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라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의견에 반대합니다. 물론 자기 마음을 제대로 보고 성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여서 우울하고 짜증 나 있을 때 마음속으로만 파고들면 더 불쾌해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스트레스받는가? 내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고민만 붙들고 있으면 우울은 더 깊어집니다.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생각을 부르게 마련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 자기 문제를 파고들면 부정적인 것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평온한 상태에서 하는 게 이롭습니다. 그래야 감정에 오염되지않은 관점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걱정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실재의 일 때문이 아니라 가상의 생각 때문입니다. 세상 근심 걱정은 거의 대부분 상상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는 일이 생겨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지면 오히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나기를 오히려 바란다면(어떤 경우는 그 일이 일어나도록 일부러 행동하기도 합니다), 생각의 의도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어 걱정도 사라집니다. 이런 치료법을 역설 의도paradoxical intention 라고 합니다.

회피로서의 분노도 있습니다. 진짜 감정을 분노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당성의 훼손에 따른 분노입니다. 이것은 원칙과 당위, 옳고 그름의 경계가 무너졌을 때 느끼는 분노입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이슈와도 관련됩니다.

정당하지 않은 비적응적인 분노도 있습니다. 화가 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는 것이죠. 수단적 분노가그중 하나입니다. 대인관계에서 감정을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분노로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드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일시적으로 내가 당신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착각에 불과한데도 이것이 강화되면 도덕적으로도 우위에 있다는 환상에 젖습니다.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고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죠.

타인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며 개인을 길들이거나 통제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그나마 갈등이 조금이라도 줄어듭니다. 누구나 한계와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자기 삶에 만족하면 사람은 저절로 부드러워집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나의 행동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며각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타인에 대한 상냥함을 잃지 않기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바로 이런 겁니다.

인간이 용서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아무런 흠결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용서할 수 있다는 자기애적 착각에서 벗어나야비로소 분노를 멈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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