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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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 책을 평하는 글인데, 독후감이 주관적이라면 서평은 객관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자신의 입장을 객관화하는 것이 독후감과 주된 차이이다.

‘독후감은 독자에게 치유의 경험을, 서평은 통찰의 경험을 선사한다.’(26p.)

이 책은 서평뿐만 아니라 초보(?) 독서가들이 모호하게 개념 짓던 독서와 관련된 다양한 행위를 정의해준다.

‘책에 다가가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책에 대한 나름의 해석입니다. 해석을 통해 책은 계속 만들어져 갑니다. 저자의 (읽고)쓰는 행위와 독자의 읽(고 쓰)는 행위로 끝없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저자와 독자가 섞이고, 읽는 것과 쓰는 것이 합류합니다. 책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30p.)

“책은 항상 새롭게 읽혀야 한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서평을 통해 구현된다.”(30p.)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나와 같은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에게 독서란 (아무리 애써봐도 짐작하기 어려운) 작가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여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 해석은 독자에게 다양하게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기도 해봤지만, 다수가 공감하는 해석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을 것이다. 작품의 의미는 책의 정답처럼, 작품해석은 정답에 대한 해설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저는 고전 텍스트를 ’텍스트-무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작품에 대한 해석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물론 <햄릿>도 출간될 때부터 무한한 텍스트는 아니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는 가운데 그것을 버텨 내는 텍스트, 그러니까 읽고 나도 계속 뭔가 읽을거리가 남는 텍스트가 바로 무한한 텍스트이고 텍스트-무한입니다. <햄릿>도 처음에는 만만한 텍스트였지만 점점 숭고한 텍스트로 격상되고, 이제는 작품의 결함조차도 의미를 갖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34p.)

확실한 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숨겨놓았다고 하든, 독자는 그 의미를 때려 맞추는 무당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때로는 책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그 생명을 연장시킨다.

‘좋은 책을 잘 읽으면, 삶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서평은 이러한 독서의 연속 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서평을 쓸 때마다 이런 마음을 되새기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평 쓰기의 목표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쯤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49p.)

그동안 책을 열심히 읽기만 했지 쓰는 일에는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일 년에 백 권 가까이 읽고 간단한 소감 정도 남기는 것이 전부였으니, 뒤돌아서면 아무리 인상깊었던 책이라 할지라도 당시 독서의 느낌만 가슴에 남을 뿐 책의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요약은 공정한 평가의 전제가 됩니다. 요약이 서평의 본질은 아니지만, 요약 없이 서평을 작성할 수는 없습니다. 평가가 열차라면, 요약은 레일입니다. 따라서 평가 없는 서평은 공허하나, 요약 없는 서평은 맹목적입니다. 성실한 독서와 이를 통한 적절한 요약 다음에 나름의 평가가 따라야 합니다.’(80p.)

‘독서의 첫 결실 또한 평가가 아니라 요약입니다. 충실한 독자라면 모름지기 자기가 읽은 것을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의 핵심을 명확하게 도출하고, 이를 바로 자기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86p.)

사실 나는 이 책을 서평을 쓰기 위해 읽은 책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무엇인가 쓰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나이 들면서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과 업무처리 과정에서 일상화된 ‘복붙 습관’의 결과 보고서에 한 문장을 새롭게 추가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빈 문서’ 앞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막연함을 느끼게 되었다. 일기를 쓰자니 너무 낯뜨거웠고,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독서 어플이었는데, 한 번씩 내가 남긴 독서평을 훑어볼 때면 너무나 저급한 나의 작문 실력에 환멸을 느낄 정도였다.
물론 글을 잘 쓰고 말겠다는 욕심은 없다. 일개 독자가 독서의 즐거움을 글을 쓰는 고통으로 이어나가야 할 당위는 없으니까. 그래도 무엇인가를 쓴다는 행위는 독서 이후의 행위가 대부분이기에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은 얇은 이 책을 선택했던 건데, 의외의 수확이 많았다.

‘문체의 난해함을 인격의 얄팍함으로 해석합니다. ...... 그에 따르면 모호한 문체는 부실한 인격을 반영합니다. 그런 작가는 논의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정직한 태도로 돌파하기보다는 난해한 문체로 회피한다는 겁니다.’(130p.)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대등한 대화입니다.’(131p.)

‘특히 문학서평은 어느 정도 문학 치유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기본 매커니즘은 동일시입니다. 자신의 실존 차원에서 소설을 겹쳐 읽고, 이렇게 자신의 삶에 비추어 서평을 쓰면 잠재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서평을 쓰는 과정은 쓰는 사람 자신을 먼저 회복시킵니다. 서평을 쓰는 삶은 이러한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직면하고, 동시에 일부 잠재 독자에게도 강력한 설득력을 행사하게 되지요.’

결국 내가 얻은 것은 독서라는 취미를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다. 나의 독서는 과거처럼 습득해야만 했던 작품의 정답이 아니라 내가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나의 해석과 그로 인해 귀결될 수 있는 내면의 치유이다. 이러한 가치는 망각이라는 인간 뇌의 피할 수 없는 숙명 때문에 기록이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특별히 내가 보는 책을 남에게 일독을 권하거나 판매해야 할 의무는 없기에 서평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는 감상문을 쓸 수 있다면 조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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