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8년 전 기억상실을 겪은 주인공 기 롤랑은 위트가 운영하는 흥신소가 폐업하여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기억을 찾으려는 여정을 떠난다.
처음 만난 폴 소나쉬체와 장 외르퇴르에게서 자신에 대해 기억나는 것들을 얘기해줄 것을 요청하여 자신의 친구라는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를 알게되었고, 스티오파를 찾아간 기는 러시아 망명 귀족들 사진을 받아오면서 사진 속 젊었을 때 자신이라고 확신이 드는 인물을 발견한다. 하지만 추적 끝에 사진 속 인물은 프레디 하워드 드뤼즈라는 자신의 친구이며, 하워드의 고향인 발 브뢰즈를 찾아가 하워드가문의 정원사인 로베르를 만나 자신이 남미 출신의 페드로 맥케부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쟁상황 중 자신의 연인이었던 드니즈 이베트 쿠드뢰즈라는 여인과 친구 페드로, 페드로의 연인 게이, 경마 기수인 앙드레 빌드메르와 함께 반 알렌의 산장으로 피난을 갔던 것을 알게 된다. 산장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같이 파티를 즐기던 보브 베송과 올레그 드 브레데가 므제브로 도피할 수 있는 길을 주선해준다고 하여 드니즈와 함께 따라 나섰다 그들에게 배신을 당해 길을 잃게 되었고, 그 이후로 자신이 기억상실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기 롤랑, 페드로는 충격과 상실감에 빠지면서 자신의 친구 프레디가 살고있는 지역을 알아내 자신의 남은 기억을 찾아 떠난다.

자신의 근원을 찾으려는 귀소본능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치부하기엔 그것이 인간의 감정에 패인 깊이는 너무 심오하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신의 현재이지만, 현재의 자신을 입증해주는 기반은 과거의 시간과 경험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모두 잃어버린 페드로(기 롤랑)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이다. 무너져있는 나 자신이라는 퍼즐을 완성해야만 나라는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궤도에 진입할 수 있기에 상실된 기억을 찾는 절박한 심정이 절제된 문장 속에서도 처절하게 느껴졌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기 주변과의 관계를 잃는 것과 같다. 추억이 변질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아예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도 모르는 상실은 다른 종류의 공허함으로 다가온다. 나의 추억과 기억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기억을 상실한다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영진닷컴에 제출했던 과제입니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의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그 예로 들어 보이곤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 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 말을 위트에게 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우리들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 P74

나는 프레디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우리들의 사진들을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어린 시절의 게이 오를로프의 사진도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 여자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녀가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동안 나의 생각은 함수호로부터 멀리, 세계의 다른 끝, 오랜옛날에 그 사진을 찍었던 러시아의 남쪽 어느 휴양지로 나를 실어갔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소녀가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 P2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