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윤고은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작에 이 작가의 상상력이 독보적이고 윤리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있을 법한 세상이 소설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 현시대의 비극이 슬플 따름이다.

우리 가족이 찢어진 일차적인 이유는 빚이었다. 그러나 언니의오피스텔과 내 원룸, 아빠의 트럭과 엄마의 생활비를 나눌 정도였다면 네 식구가 함께 사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평생을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는데, 우리 가족은 적당히 가난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차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분리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에게 냉담했고, 이혼을 미루고만 있었다. 두사람은 이십팔년간 한집을 공유했다. 집에는 수많은 잠재적 무기들이 있었다. 과용하면 독이 되는 상비약을 꾸준히 건네는 것만으로도 범죄는 가능했다. 한때는 철제 의자가 찌그러진 적도 있었다. 밤마다문짝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마저 지나고 고요해진 지 오래였다. 평화가 아니라 침묵이었다. 내공이 쌓인 두사람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공유하면서도 대화하지 않는, 농담하면서도 웃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사에 조금 앞서서두사람은 공식적인 부부관계를 청산했다. 나는 그저 덤덤했다. -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