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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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하나가 왠지 나의 지난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지친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나만 지치고 뒤처져 있는 것 같은게 세상속에 뒤엉켜 사는 사람들이 하는 보통의 생각인가보다. 나아지고 있는데 더 나빠지기만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김애란작가의 천재적인 비유가 역시나 돋보이는 문장들이 많았다. 훔치고 싶은 표현들. 내가 작가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이 드는 책.

에스컬레이터 위로 얼굴이 부은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게 보인다. 그들 모두 어릴 때 꿈이 ‘훌륭한 사람은 못 되었어도, 공휴일에 출근하는 사람’은아니었을 거다. 그녀는 에스컬레이터의 긴 행렬에 바싹 따라붙은 뒤, ‘내가 사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이러고 있지 않을텐데‘ 탄식한다. 그러고는 이내 부끄러워한다. 학부모들이상담 때마다 하는 말 중 하나가 ‘우리 애가 공부를 못 해서‘가아니라 ‘욕심이 없어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49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스물한 살 여자는남자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다. 그것은 허영심이기 전에 소박한 순정이었다. - P91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하지만 모든 별자리에 깃든 이야기처럼, 그 이름처럼, 내 좁은 동선안에도 나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 P118

진동음이 전해질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휴대 전화 크기만큼 작아진 언니가 내 호주머니 안에서 자꾸 울어대는 것 같다. - P187

어머니는 셋방의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갚을 순 없어도 잊어선 안 되는 일들이 있다고, 어머니는 무릎에 힘을 주며 계단을 올랐다. - P217

어쩌면 처음 해보는 남의집살이가 불편해 최대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서로를 조금씩 견디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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