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3
오스카 와일드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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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할 것인가 반성할 것인가.
오스카를 유미주의자라고 하는데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바로는 오스카는 유미주의에 대해 철저히 자기반성을 하고있다.
헨리의 대사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극찬같은 탐미주의가 돋보이지만, 오스카의 인생은 결국 타락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니까.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한 허황된 말만 쏟아내는 헨리의 인생은 그닥 불행해지진 않는다. 어찌보면 도리언은 헨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순수했다. 헨리는 순수한 도리언을 더럽혔다.

마지막 도리언이 깨달은 신에대한 기도문을 내가 좀 더 각색해 보자면 ‘죄를 죄라고 인지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해주소서…’라고 하고싶다. ‘죄를 벌하여 주소서’는 내가 저지른 일이 죄라는 것을 알고있는 경우에야 할 수 있는 말이고, 대부분 인간은 자기가 저지른 죄로 벌을 받게되는 상황이 돼서야 그 죄를 인지하거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줄거리만 알고 읽지는 않은 책들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베스트트랜스의 번역은 정말 최악이다.

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들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삶에서 필요하지 않은 미덕의 중요성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보통이다. 부자들은 검소함에 대해, 게으른 자들은 노동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에 대해 떠들어 댈 것이다. - P24

일단 육체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청산하게 되는데, 이것은 행동이 정화하는 양식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행동 뒤에는 쾌락에 대한 회상이나 후회 따위가 남을 뿐이죠.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유혹에 저항하려 들면, 당신 영혼은 스스로 금지한 것에 대한 갈망과 기이하고 비합법적인 것들에 대한 욕망으로 병이 들 겁니다. - P32

아름다움도 천재성의 한 형태예요. 아니,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천재성을 능가한다고 봐야겠죠. 햇빛이 청명한 봄날, 우리가 달이라고 이름 붙인 저 은빛 조개가 검은 물위에 비쳐 반사되는 것처럼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사실이에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지요. 아름다움은 신성한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왕자가 되지요. - P36

"항상? 그건 정말 무서운 말이네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몸서리가 쳐져요. 그 말은 여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죠. 여자들은 로맨스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모든 로맨스를 망치는 거예요. 영원이라는 말은 의미 없는 말이에요. 일시적인 기분을 나타내는 변덕과 일생의 열정 사이에 단 한 가지 차이점을 찾는다면 그건 변덕이 좀 더 오래 간다는 것이지요." - P39

"도리언, 건드리고 싶은 것만이 신성한 거예요. 왜 그리 화를 내는 건가요? 언젠가는 그녀는 당신 것이 될 테지요. 인간이란 사랑할 때 처음에는 언제나 자신을 속이는 법이에요. 그리고 사랑이 끝날 때는 상대방을 속이고 말이죠. 그걸 바로 로맨스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쨌든 당신은 그녀와 알고 지내는 거죠?" - P77

그는 인간이 심리학을 엄밀한 하나의 학문으로 만들어 삶을 이루는 작은 샘물 하나하나를 다 밝힐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경험은 윤리적인 가치가 없다. 그저 인간이 자신의 실수에 붙인 이름이 경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도덕주의자들은 경험을 교훈을 주는 방법으로 치부했으며 경험의 윤리적 효과가 성격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험에는 어떤 원동력 같은 것이 없었다. 양심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힘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경험은 우리의 미래와 과거가 같다는 것, 우리가 한때 저지른 죄악을 몹시 혐오하면서도 결국엔 죄악을 수없이 되풀이하리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 P85

"바질, 자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도리언은 틀림없이 그 여자와 결혼을하고야 말 거야. 분명히 그러고도 남을 친구야. 인간이 철저히 바보짓을할 때는 항상 고귀한 동기가 있거든." - P105

이런 귀중품과 그가 자신의 저택에 수집해 둔 많은 물건들은 그가 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 P188

아! 초상화가 그의 생명이 가졌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고 그가 영원한 청춘의 순수한 광채를 간직하게 해 달라고 했던 저 오만하고 격정적인 기도를 왜 했단 말인가! 그의 모든 실패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차라리 살아가면서 죄지을 때마다 확실한 처벌을 바로바로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영혼을 정화해 주기 때문이다. 대단히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가 아니라 ‘우리 죄악을 벌하여 주시고’가 되어야 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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