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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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소설은 비극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래서 결말을 비극으로 단정짓고는 독서를 앞으로 나아갔는데, 글쎄 이 소설이 주행방향을 틀지 않는 것이다.
사실 장류진소설은 대부분 유쾌했다.
근데 왜 웃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게 정말 웃겨서는 아니다. 오늘도 내 인생을 자조하는 현실이 슬프기 때문에, 그런 슬픔이 있기 때문에 웃기다. 드라마틱한 역경도 없지만 그냥 슬픈 현실, 또 한편 그게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어정쩡한 슬픔이라는 그냥 그런 보통사람들의 현실이라서, 웃기지만 슬프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그래서 먼저 꺼내지 않는 이상 그 일에 대해서 일부러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가끔 저녁을 먹으러 가는 회사 근처 백반집 텔레비전에서 투자했던 회사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언니는 전에 없이 상스럽게 욕을 해댔다. 쥐벼룩을 놔도 뛸 장에 저 혼자 바닥을 쳐 뚫고 앉아 있는 ‘개잡주‘ 라면서. - P88

생각이 여기까지 오면 여유 있는 집안에서자란 게 부러운 게 아니라 사람을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부러웠다. 반대로 나는 속으로이렇게 좀스럽게 굴면서 쉽게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은상 언니, 지송이와 이야기할 때는 그런 게 없었다. 첫날부터 우리는 우리가 같은 부류‘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고, 그 느낌을 바탕으로 한 호감으로 자주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완전히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일상은 아무리 탈탈 털어도 부모가 대졸자라거나, 더 나아가 공무원이라거나, 전문직이라거나 즉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라는 정보값은 없었다. 대신 여러가지 이유들로 집안에 빚이 있고, 아직 다 못 갚았으며, 집값이 싸고 인기 없는 동네에 살고, 주거 형태가 월세이고5평, 6평, 9평 원룸에 살고 있다는 공통 정보가 나왔다. 나는 이 사람들을 마음 놓고 편히 좋아할 수 있었다. 이 둘과 있으면 내 삶이 딱히 별로라는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서로가 자신의 자리에서 이 정도면 성실하게 잘 지내고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여태까지는 그랬다. - P105

딱 그 연차가 그런 뽕에 취할 때지. - P286

"저 사람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했단 말이야."
"무슨 말?"
"나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너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난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역시, 그것 때문이었구나. 은상 언니가 목소리를 낮춘채 이어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을 정말로 싫어한다고. 그렇게 사람을 아래로 보면서 하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정도‘라는 말 앞에 ‘나한테는 아니지만‘이 생략된 것 같다고 했다. 나한텐 아니지만 너한테는 그 정도면 족하지. 그 정도면 감사해야지, 그런 말들. 기만적이라고 했다. 그런 종류의 말을 하는 사람의 면면을 잘 봐두라고 했다. 그게 정말로 자신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모자람 없이 넉넉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를. - P309

주말의 회사는 평일만큼 기운을 축내는 공간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면에서는 충전이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단, 나를 제외하고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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