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키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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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딩씨 마을의 꿈>을 봤을 때 딩수이양의 장애에 대한 편견이 좀 아쉬웠는데, 그 편견이 나의 오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은 장애에 관한 책은 아니다. 저자나 번역가나 장애에 대한 심도있는 인권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은 아닐테지만 적어도 마오즈 할머니의 대사에서 알 수 있는 격과 결이 있었다.

이 책은 아마 옌롄커의 군복을 벗게한 소설이라고 알고 있다. <물처럼 단단하게>와 같이 공산당원들이 자행하는 악랄한 행동이 과감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결말을 보면 옌롄커는 <침묵과 한숨>에서 얘기하는 ‘자기검열’을 거친듯한 느낌이 들긴하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내용에서, 특히나 결과만 나오고 (좀더 잔인하게) 그에 대한 응징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금서가 되지 않았을까.

<딩씨 마을의 꿈>처럼 약자들간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인간의 치졸한 본성을 비판하는 부분도 나타난다. 투쟁의 대상을 망각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우리 속세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슬프다.
작가가 좋아하는 환상소설의 요소도 가미가 되어있다. 이런 환상적인 요소가 마치 꿈에 취한 몽환이 아니라 비극을 더 강조해주고 있지만.

하여간 옌롄커의 소설은 비참한 한숨이다. 자꾸 자기검열을 하게되는게 너무 부끄럽다는 작가인데, 마음 놓고 쓰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소설을 쓸까.
빨리 노벨상이나 탔음 좋겠다.

마오즈 할머니가 말했다. "자네가 사람들 앞에서 바늘귀에 실 꿰는 묘기를 보이는 건 자네를 욕되게 하는 일일세. 자네 눈을욕보이고, 자네 얼굴을 욕보이는 일일세. 자네가 원숭이처럼 놀림감이 되는 일이란 말일세." - P203

마오즈 할머니가 말했다. "아이의 장애를 사람들 구경거리로 만들어선 안 되네." - P204

온 식구가 맹인이라면서 어떻게 우리 같은 멀쩡한 사람들보다 잘살 수 있는 거요? 이 세상에 어떻게 장애인이 멀쩡한 사람보다잘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냔 말이오? - P414

사정은 여기서 또 갑자기 바뀌었다. 창가의 온전한 사람들 얼굴에하나같이 고소해하는 웃음이 걸렸다. 그 얼굴들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백금처럼 하얗게 타오르면서 서우훠 사람들의 눈을 찔렀다. - P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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