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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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에 이런 서사가 있었다는 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게 부끄럽다.
사슬같이 이어지는 인물들의 운명 속에 감동과 해학적인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그래도 계속 읽을수록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독자의 법칙이었다. 특히 해설 속에서 알게 된 라블레라는 작가도 알게 되어 유익했다.
물론 이 작품을 남미환상문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적 환상소설로만 치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르케스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많겠지만 <고래>같은 감동적 서사와 재치있는 문장력은 흉내 낸다고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니니까. 더군다나 데뷔작이라니, 작가가 후기작품을 쓸 때 느꼈을 심리적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이걸 왜 내가 걱정하나...)

초반에 조금 거북한 부분을 잘 극복하고 노파와 금복과 춘희의 관계도가 살짝 헷갈렸던 부분을 잘 정리해 나간 이후 50p.부터는 가독성이며, 흡입력이며 근간 읽었던 책들 중 최고였던 것 같다.


여담으로 이 책 역시 걱정과 같은 환상속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민중과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여성들인데, 그래서 그게 더 설득력있고 사실적이다. 씁쓸하다.

그날 걱정은 짧은 한 순간에 영웅적인 용기와 어리석은 만용을순서대로 모두 보여주었다. 다만 여느 하역부 같았으면 이미 그 자리에서 납작하게 즉사하고 말았을 것을 죽지 않고 살아 있음으로해서 자신의 남다른 능력을 확인시켜주었을 뿐이었다. - P107

어쩌면 그녀는 그때 이미 자신을 보호해줄 남자가 아니라 옆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도와줄 남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녀는 뜻밖에 찾아온 행운을 계기로 이제 자신을 만난 사내들이 모두 불행해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 P217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믿음의 대가였다. - P247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 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들어가 소비가 더욱 촉진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 P280

이전의 그 같았으면 그저 한번 웃고 넘길 일이었겠지만 이미 그는 이전의 금복이 아니었다. 이즈음 그에겐 이전의 당당하고 인정 많은 여장부의 모습은 간데없고 이기심과 치졸한 복수심으로 가득찬 속 좁은 사내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 P368

재판정은 그저 피고의 운을 시험하는 무대였을 뿐 정의와는 애초에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장군의 시대는 대개 그런 식이었다. - P395

그는 건축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했으며, 건축을 단순한 공학의 차원에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연스럽되 거칠지 않고 아름답되 요란스럽지 않으며 실용적이되 천박하지 않고 조화롭되 인공적이지않은 건물을 짓는 것이 바로 그의 건축학의 모토였다. 그것은 매우엄격한 통제력과 뛰어난 예술적 영감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가 건물을 하나씩 지을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에겐 많은 일거리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신중하게 일을 선택했다. 그는 관습적인 것을 두려워했으며 자신의 재능이 부자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경계했다. - P499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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