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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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변의 한국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인간의 처참한 실패를 보여주는 쓸쓸한 이야기. 다만 해피엔딩이 더욱 더 사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소시민의 행복은 정신의 승리로써만 이룩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져서 인가.

이정도면 남성작가가 쓴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지난 몇 십년간 한국을 근간 없이 성장시킨 남자들의 찌질함은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소설 전반에 두드러졌고, 결국 인간의 삶을 진정한 인생으로 만들어내는 구원자 역할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만수같이 판타지적인 요소가 깃든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가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고 사실적이었다.

만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이 늦었고 매사에 이해가 더뎠다.
잘 모르면 질문을 하라고 했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어려운 문제도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질문하는 사람도 배우지만 대답하는 사람도 배운다. - P25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제어장치가 전혀 없는 폭발물 같았다. 그런데 나 또한 그런 아버지의 폭군 기질을 물려받은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물론 나는 아버지처럼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맨정신으로도 아버지처럼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아버지와 다른 점이었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그래도 묵묵히 일을 하고술을 마시고 미쳐 날뛰고 난 뒤 다시 조용해지는 아버지와 달리 나는 발작 전후에 침착하고 냉정했고 발작의 원인이 된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발작 때 보탰다. - P199

조건이 환경을, 환경이 인간을 바꾼다. 돈이 세살 때부터 시작돼 이십년을 끌어온버릇도 고친다. 호칭 역시 조건이다. - P215

그 때문이었다. 그랬다. 내가 혼자 며칠째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병문안을 하러 왔다면서 설렁탕을 냄비에 담아 왔다가 죽은듯 잠들어 있던 나를 덮친 그를 용서한 것은, 외로웠다. 힘들었다. 무서웠다. 무릎 꿇고 비는 인간이 의지가 될 정도로. - P267

상처에서 나는 진물처럼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 P274

당사자가 아니면 참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식사를 하고 난 손님들이 구경을 하느라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 P293

문제는 연탄이었다. 방의 호수별로 구역을 표시하고 들여놓은연탄을 쌓아놨는데 슬그머니 한두장씩 없어지는 일이 잦으니까 매일 숫자를 세어보게 되고 서로를 감시하면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그러니 가난하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끼리 싸울 일이 더 많은거였다. 그 연탄을 우리에게 팔아먹고 돈 많이 벌고 세금 많이 걷고 영원히 부와 권력을 물려주고 물려받을 인간들하고 싸울 생각은 하지도 않고,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인간들끼리 머리 뜯고 대가리 깨지고 피 흘리며 싸우고 또 싸우는 것이었다. - P304

비꼬고 비웃는 건 속이 배배 꼬인 어른보다 더 잘했다. 타고났다. 천재가 맞았다. 사람 속을 긁어 피가 철철 나게 하는 데는 소름이 끼쳤다. - P323

생각하면 카지노도 고마운 곳이다. 쓰레기장이 없으면 쓰레기를어디다 버리겠는가. 쓰레기인 줄 판별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시켜주기도 하는 것이다. - P333

투석을 하러 가서 보면 병원에 누워 있는 여자 환자들 중에 옆에남편이 붙어 있는 경우는 열에 하나도 안됐다. 반대로 남자가 누워있으면 열에 아홉은 아내가 간호를 했다. 여자들은 자기가 스스로 간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한국의 여자 팔자였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기 간호를 하면서라도 병원에 편하게 누워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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