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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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이 기억에 가물가물한 사람들은 뒤에 충무공연보를 먼저보고 읽기 시작하면 좋을 듯.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작품을 구현해 내도 조선 3대 똥이라는 선조의 지독한 찌질함이 가장 기억에 남는건 어쩔 수 없다.
사실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영웅의 서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읽어 봤다’는 득의를 뽐내기 위해선 필히 권장할 만한 책이니까.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 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권율이 나를 기소했고 비변사 문인 관료들은 나를 집요하게 탄핵했다. 서울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나는 나를 기소한 자와 탄핵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 P23

여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당에 쓰러져 울었다. 몸 안으로밀어넣으려는 울음소리가 몸 밖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그 여자는 전신으로 울고 있었다. 작은 몸뚱어리 어디에 그토록 깊은 울음이 감추어져 있었는지, 여진의 울음은 길었다. 강 건너편에서 달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울음이 스스로 추슬러질 때까지, 흔들리는 어깨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P28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못할 것입니다. - P46

잘 죽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길은너무 멀어서 끝은 보이지 않았다. - P79

상처가 아물어도 통증은사라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아픔이 살아 있는 몸속에 박혀 있었으나 병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병은 아득한 적과도 같았다. 흐린날들의 어깨 쑤심증은 내 몸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적의 생명으로느껴졌다. - P155

술 취한 명의 하급 지휘관들이 히데요시의 유언시를 노래로 부르며 춤을 추었다. 술 취한 이국 군대들이 부르는 노래가 칼처럼내 마음을 그었다. 그날 나는 취했다. 내 마음속에서 내 칼이 징징징 울면서 춤을 추었다. 저러한 노래, 저러한 시구를 이 세상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 - P278

서울로 올라간 감찰관은 내가 임금에게 보낸 장계의 원본을 제시해줄 것을 조선 조정에 요청했다. 조정은 겁에 질렸다. 조정은진린에게 가해질 천자의 노여움에 조바심쳤다. 선전관이 고금도수영에까지 내려왔다. 선전관은 사실을 요구하지 않았고 해결책을 요구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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