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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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장류진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보다 크게 흥하지 못했던 건 작명의 실수이거나 출판사 마케터의 문제거나 실패한 북디자인 때문이거나....아니면 유쾌함이 좀 부족했나

직장생활과 사회초년생들의 너무나 일상적인 감정의 사실적인 묘사로 속이 다 시원해지는 통쾌함.... 그 뒤에 밀려오는 씁쓸함. 그런식의 흔하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진귀한 공감.

북디자인은 너무 아쉽다. 민음사 천재디자이너라면서 유튜브를 본 기억이 나는데...... 의도는 알겠으나 너무 과하게 양옆으로 밀린 감이 있다... 나중에 개정판 양장본 나오면 다시 구매하기로.......

"형, 데리러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찾아가도 되는데."
연승은 순식간에 그의 대외적인 모습 명랑하고 싹싹하며, 약간은 비굴한 하인의 모습으로돌아와 있었다. - P20

그는 아내에게 깍듯하게 존칭을 썼다. 한 마디한 마디 반듯하고 정성스럽게 했다. 진아는 자신이날마다 마주하는 회사 사람들, 늘상 서로 힘을 재어 보며 재치 있는 말 한마디에도 숨은 의도가 담겨 있어 곱씹어 보게 만드는 사람들 자신도 그중하나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 을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소중한의 태도가 뜻밖에 신선하게 여겨졌지만, 사무실 안에서라면 그런 부류의 인물은 잘해봐야 외계인, 지루한 샌님쯤으로 여겨지며 고립될게 분명했다. - P21

그녀의 가족을 움직이는 건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공유되는 일종의 믿음, 금기, 평판에 대한 강한 의식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한데 얽혀 구분이 되지 않았고, 일상적인 두려움을 만들어 냈다. 삶에 대한 두려움. 그녀는 그녀의 엄마를 구속하고 있던 그 막연한 두려움, 공포로부터 도망치려고 애를 써 왔고, 어쩌면 자신의 인생 전체가 내내 거기서부터 벗어나려는 도주의 과정이리라는 걸 그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 P64

바깥현기증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인식하지도 못했던 광경이 갑자기 빛을 비춘 듯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상률과 하려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이건 결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집을 구하고, 그 집을 채울 가전제품을 사러 다니고 있었다. 그게 결혼의 뜻이었다. 이번 이사는 이전 생활의 연장이 아니었다. 그저 방 하나 더 많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준비되지 않은 무대 위로 등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 P80

엄마는 한 달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뿐인 딸에 대한 기대를 점점 내려놓았다. 하지만엄마뿐만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한기대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자신이 누릴 수 있을줄 알았던 것. 때가 되면 손에 들어올 줄 알았던모든 것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웠던, 교과서와 텔레비전이 말하던 이미지와 삶의 방식들을, 그리고그녀는 훌륭한 딸이 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훌륭한 딸이 되려 할수록, 그녀는 불행해졌다. 어쩌면 훌륭한 딸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거라고. - P87

게다가 내가 지금껏 뭔가를 사고 찾을 때마다 검색해 참고했던 블로그 후기들도 죄다 업체를 통해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글이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기란거의 불가능했다. 맛집이나 병원처럼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일수록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자주 검색하고 참조하기 때문에 시장이 되는 것인데, 시장이 되면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정보는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경제구나.
나는 세상의 이치를 목도한 사람처럼 약간의 경이로움과 체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107

그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완전히 자발적으로, 20대 중반까지는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학습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았고, 내 머리와 손끝을 써서 뭔가를 생산해 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해 정성을 기울이면 결과물이 더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 P108

그러나 실제로벌점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N포털의 로직은 공개된 바가 없었기에, 업계에는진위를 알 수 없는 추측과 속설만 무성했다. - P109

그러고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내가 회사 차릴 때 연락하면 바로 온다고 약속해."
나는 애매하게 웃어넘겼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따져 보면 나를 높이 평가해 주는 말인데도, 그때 내겐 그 말이 뻔뻔하게여겨졌다. 곱씹을수록 불쾌했고, 화가 났다. 바로온다고 약속해. 마치 그동안 자기가 내게 굉장히잘해 주었던 것처럼, 내가 굉장히 대우받으며 일했던 것처럼, 심지어 질문형도 아니었다. 물을 필요도없다는 듯이, 나도 당연히 자신과 일하고 싶을 거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 P128

엘리베이터가 왔고, 선화는 다른 얘기를 이어갔다. 방금 전 자신이 느낀 감정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냥 제일 성실할 것 같아 뽑았다고 했을 때 느낀 기분이었다. 가슴께에서 막 고개를 내민 연한 싹에 끓는 물이 한 바가지 끼얹어진 듯한. - P142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보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선화가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점심에도 늦었는데,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녀는 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리고 선화 또한 자신이 의식하는 것들을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그 많던 금기들.…… - P143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입니까?"
그가 길을 건너 다가오면서 말했다.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더니, 아무것도 모르는군, 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분들이 기사도 안 봤나 보네. 김정일 죽었대요. 지금 난리 났어요."
상미와 효정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꺼냈다. 그는30대 중반인데, 뱅글거리는 입매에 늘 모든 걸 안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 P230

"이겼지만 패배한 기분이었다." (236쪽)라는 상미의 말은 적대와 경쟁을 부추기는 세계에서 적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세계의 부조리와 부정의는 외면해 버린 그녀가 자신을책망하며 던지는 자조다. - P308

특히 팀원의 의식주에까지 관심을 갖고 호의를 베풀던 은정이 다른 팀들과의 신경전에서는 공격적이었다는 선화의 기억을 참조할 때, 은정은 팀을 마치 ‘가족‘처럼 꾸려 온 것 같다. 경쟁과 대결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가족만큼은 유일한 안식처로 기능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관습적 인식을 은정 역시 갖고있었을 것이고, 선화의 복장과 식사와 주거에 대해애정 어린 참견을 해 온 것이다. 선화의 이직이 은정에게 준 과장된 상실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된다. "난 네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어." (153쪽) - P314

한편 동기들은 일을 잘 못했다. 팀장은 홍성식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팀장과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자신을 인정해 주어야 할상사가 그러지 않자, 그는 상사의 자질을 의심했다. 팀장이 옛날 사람 같다고 했다.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요구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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