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반양장) 문학과지성사 이청준 전집 13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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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고전이 될 작품들, 개인적인 독서 시기에 약간 앞서있어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들을 천천히 읽어보려는 계획이다. 한승원, 김승옥, 이청준.... 등등.
눈길은 이제 수능에도 나오는 문학인가 보다. 하긴 내 수능 시절에도 조세희작가의 작품이 나와서 다시 한번 베스트셀러가 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이청준과 동시대 문학작품이니, 조세희작가는 좀 더 일찍 수능의 덕(?)을 본 거라고 해야 하나. 다만 이런 문학‘작품’들이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이야 반가울 일이지만 수능으로 인해 그 순수함이 더럽혀지는 안타까운 일도 불가항력적이다.

한국 고전에 올라선 작품들보다는 읽기 편하지만, 현시대의 문학들보다는 조금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아직 시대를 아우르는 감성을 파악하고 사유를 체화하는데 능력이 닿지를 못하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시대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조금은 변했기 때문에 (굳이) 문제제기를 할 부분을 찾아낸다면 없지 않겠지만, 최근 고전을 읽다 보면 생기는 가치판단의 변화들 때문에 혼란스러운 일은 매한가지다.
당시의 감성은 확연히 현재의 감성과는 좀 더 차분한 속도감인 것 같다. 분명 극단과 혼란의 시대라고 하는 격변의 시기인데 큰 사건도 왠지 잔잔하게만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불 머금은 항아리>와 <잔인한 도시>였다. <소리의 빛>은 너무 가학적인 정신세계의 예술관이라 몰입도는 높지만, 감동이 오는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고 <불 머금은 항아리>가 예술가의 성장을 보여주는 한편 영웅의 실패를 즐거워하며 ‘소장’까지 하려는 빈약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조롱까지 가미되어 몰입도는 좀 떨어져도 긴장과 감정이 은은하게 지속되는 작품이었다.
<예언자>나 <얼굴 없는 방문객>은 흥미롭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미신적 서사에 정당성을 주는 것 같아 별로고, <겨울 광장>은 먹먹한 여운이 있지만, 현시대 가치판단의 잣대를 잠시 옮겨두고 봐야 하는 점도 있었다.

죽은 사기를 깨 없애는 데에 그 사기를 구워내는 법칙이 생기는 게요. 죽은 사기들을부수면 부술수록 살아남은 우연들이 남아서 분명한 법칙의 묶음을이루는 이치지요. 그래서 이 사기장이 일에도 그 나름의 보람이나법도가 정해져온 것이오. 그런데 노형 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 사람의 실수들을 찾아 엮어보시오. 아무 곳에도 신용할 법칙이 남아나지 못할 게요. 실수가 없을 사람도 없고, 실수가 없는 일이 없을수도 없지만, 또한 그 실수를 사람답게 감싸고 아껴주는 것도 사람 나름의 생각일 터이지만, 그런 사람이 들끓다 보면 세상은 그저 아무 곳에도 법도가 없는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게요…..." - P193

"가마 일이란 그저 나무를 지펴 불길을 내는 것만으론 흙이 제대로 구워지질 않는 법이오. 가마 속의 불길이 붙을 때는 사람의가슴으로 옮겨붙어와서 불을 때는 사람도 그 가마 속의 흙덩이들과 함께 불길을 참으며 심혼이 뜨겁게 타올라야 하오. 그 불길로사람은 자기가 지녀온 잡념을 깡그리 태워 없애서 가마 속의 흙덩이들과 오롯한 정성으로 함께 타올라야 하는 게란 말이오. 그래야사기다운 사기를 얻을 수 있는 게요. 말하자면 가마의 불을 때는일은 불 때는 이 자신의 불길을 피워 올리는 것이오. 그래서 그 불때는 일이 가마 일을 배우는 근본인 것이오."
"그런데 그 젊은이에게 이제 비로소 불길이 옮겨붙은 줄 어른께선 어떻게 아셨다는 겁니까?"
"그 아인 여태까지 죽은 사기와 산 사기 구분도 제대로 못해온위인이었소. 구분을 못하니 사기 깨기가 무엇보다 두려웠소. 하지만 불 때는 일을 익히기 시작하면 죽은 것과 산 사기의 구분은 저절로 익혀지오. 제 불길로 익은 흙이 제 눈에 어떻게 분별이 안 되겠소. 제 불길로 제가 타지 못하면 사기도 제대로 구워지질 못하오. 잡념이 남으면 불길이 사람으로 옮겨붙을 리가 없지요. 가마속의 흙과 함께 탈 수가 없지요. 잡념이 모두 타 없어지지 못하면사기에도 역시 잡념이 옮겨 남소. 그 아인 여태 잡념이 들끓고 있었소. 그래 흙을 제대로 구워내지도 못했고, 죽은 사기와 산 사기의 구분도 못해왔소. 그 일이 그저 두렵기만 했소. 하지만 요즘엔많이 나아졌지요." - P195

하지만 그런 경섭의 자랑을 듣고 난 사람들 가운덴 그 사기장의생애와 항아리의 내력에 대한 감동 이외에 뒷맛이 이상스럽게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바로 그 사기장의 오랜 소망에도 불구하고 그 한 번의 실수의 흔적이 아직도 사기장의소망대로 거두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 말하자면 그 사기장의 이야기가 보여준 아프고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항아리는 바로 그절망스런 내력과 말 없는 소망까지 오히려 소중스럽고 값진 의상이 되어버린 기이한 운명의 역리(逆理) 때문이었다. 사기장에게로되돌아가야 하는 항아리의 그 말 없는 소망의 내력 때문에 오히려경섭의 늠름한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씁쓸한 역리의 뒷맛 때문이었다. - P203

검표원 녀석도 그때그 비슷한 말을 한 바가 있었지만, 완행댁은 그 처녀 시절의 의붓터의 되풀이된 좌절감이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여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원망과 좌절의 기억들이 그녀에게 자신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였고, 그 사라진 자신을 대신하여 자꾸만 다시 가엾은 딸을 떠나보내고 있는 형국이었다. 완행댁이 찾고 있는 딸아이는 바로 완행댁 자신을 대신하여 그 딸의 이름으로 그녀를 떠나가고 있는 완행댁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행댁에겐 무엇보다 아름답고 소중스런 꿈이었다. 광장 사람들은 그 완행댁에게서 그녀의아비에 대한 두렵고도 원망스런 기억 이외에 그남편과 아들로부꿈을 빼앗아버릴 수가 없었다. 완행댁에게서 딸의 환상을 빼앗는것은 완행댁을 위해서나 광장 사람들 자신을 위해서나 더 이상 잔인스러울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배운 것 없이 늙어온 군밤장수 강 영감마저도 젊은이로부터 사연을 듣고 나선 오히려 이렇게 말했댔다.
"그렇담 젊은이도 알겠구만, 젊은이의 모친에게 그 딸을 찾아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모친을 얼마나 상심시키게 될 일인 줄을말이여. 젊은이의 모친은 지금 그 딸아이에 의지해서야 비로소 자기 신세에 얼마간 너그러워질 수가 있는 것이고, 그 딸아일 의지하고서야 세상이 훨씬 견딜 만하게 되어가고 있으니께 말일세. 뭣보담도 모친은 지금 그 딸아일 쫓아서 자기 자신을 찾아 돌아댕기고 있는 거 아니겠느냔 말이여. 그러니 나 같으면 여기서 자꾸 모친을 집으로 끌어들이려 하질 않겠구만, 여기서 그냥 가여운 딸아이 소식이나 기다리게 모친을 놔둬드리는 게 나을 게란 말이여."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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