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빛
백수린 지음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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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천년을 사는 방법이 있다고. 독서라는.... 삶의 다양한 이면들을 여러각도로 보는 기회라고...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노트를 정리하니까 좀 더 진하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당장 따라가지 못하는 수업을, 끝내지 못한 과제를, 마칠 수 없을 것 같은 논문을 걱정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들은 언제나 내게 그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앞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달하는은 언제나 창피하고 조금쯤 비참했다. - P22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우연에서 어떤 계시의 흔적을 찾고 싶어하는 법이다. - P70

오빠는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해, 하고 내게 말했다. 네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우리 때와 달라. 그렇게도 말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경쟁에서살아남을 수 있어. 오빠는 아무것도 몰랐다. 오빠는 정말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오빠는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 세상을 아직 살아보지 못했던 거니까. - P79

교수들도 포기한 원서 독해를 추구하는 선배의 열정은 무모해 보였다. 처음에는 스무명쯤에 달했던 스터디의 인원이 줄고 줄고 줄어서 한 학기 만에 열명도 채 남지 않았다.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별히 러시아어에 열정이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씨를 뿌렸으면 거둬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19년 동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결과였다고나 할까. - P109

이해는 했지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무례가 난무하는 시절이라지만 기분이 상했다. - P127

나는 죽음이 슬픈 이유는 잊히기 때문이 아니라 대체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배웠다. - P128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번번이 괴로워졌으므로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그저 세상의 이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쩐지 변명 같았고, 그래서 결국은 씁쓸한 기분이 되고 말았지만. - P148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지켜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생각했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햇살이 우리가 타고 있는 차를 부드러운 파도처럼 집어삼켰다. - P273

삶에 생로병사가 있듯 사람 간의 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은 한때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모든 관계가 생로병사를 겪으며 자연사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나는 지척에서 우리에게 닿을 것처럼, 닿을 것처럼, 밀려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사로 끝나는 수많은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습적으로, 불시에, 사멸하는 관계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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