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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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허구이지만, 누구에게나 익숙한 사실과 그럴싸한 거짓말이 범벅이 된 난장판이라면 그건 그냥 독자를 기만하려는 허위일 뿐이다. 대체 그럴싸한 허구를 지어내기 위해 그 많은 허구의 인물들과 인터뷰, 저작물을 창조해 내다니, 이 작가는 기자가 되지 못한 한을 소설로 풀어보려는 심산인가.
영화감독 장 자크 밀레노를 열심히 찾아본 멍청한 독자가 나만은 아니길.....(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피까지 다 찾아본 나는 정말 두서없이 앞서가는 멍청이였다.)
그래, 화자가 거짓말쟁이였으니 이 소설의 주제는 그냥 미천한 구라다.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주제로 담기위해 직설적으로 믿을 만하지 못한 인물들을 나열하고 화자가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써내는 단순성이 문학적인 가치가 있나? 정말 최악이다.

젊은 여성작가가 남성에 빙의해 화자가 되어보려한 시도도 정말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남성작가가 여성화자로 소설을 쓸 때 여성독자들도 이런 이질감을 느끼나. ‘종수’라는 남자 이름의 여성화자라 생각하고 초반부를 읽어갔다. 그러다 화자가 명백하게 남자라는 걸 알게됐고, 이 감정선은 도저히 남자라고는, 심지어 여성성 충만한 감성적인 남성이라고 해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찌질함’때문에 소설이 너무 거북해졌다.

재미는 너무 당연하게 없다. 중심을 잃고 마치 실존인물인냥 등장하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뒤섞여 있다가 그냥 이건 구라니까 결말도 구라처럼 끝내버리자는 나름 철저한 계산과 의도가 담겨있는 듯 하다.

어째서 그런 식의 논리가 성립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러한 엄격함의 기본은 복장 단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겉모습에 신경쓰는 것을 막으면 모든 관심이 자연스럽게 공부 쪽으로 흐를 것이라는 명제‘가 있었다. 또한거기에 덧붙여 교복을 단정하게 입으면 입을수록 정신 상태가 좋은것이라는 ‘이론‘도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또다른 온갖 ‘이론‘이 있었다(저 모범생 좀 봐라, 얼마나 단정하게 교복을 입었니? 혹은, 저따위로 꾸미고 다니는데 무슨 공부람! 또는, 쯧쯧쯧……). - P52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단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건 나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사방팔방 알려야 하는 그 순간이었으니까. - P89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글자로 기록하면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아주 조그마한 실마리라도 발견하게 되기를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바랐다. 그 당시 내가 세웠던 원칙 가운데 하나는그들이 해준 이야기 중 랄프 로렌(티모시)과 조셉 프랭클에 관련된내용만 기록해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각각의 기억들은 지극히제한적이어서 때때로 정면으로 배치되고 모순되고, 순수하게 말이안 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그러한 어긋남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나중에 들음으로써 그들이 혼란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야기를 시작한 이후에야,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풍부하고 생생한 기억의 토막들이, 언어화되는 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마치 안개 속을 더듬거리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워진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방금 전까지의 머뭇거림이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에 탄력이 붙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용케도 그 시절의 자기 자신을 끄집어낸다. - P151

"세상에, 당신, 동양인이었어요?"
그녀는 내 이름 같은 건 주의깊게 듣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야나는 그게 그녀의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매사 그런 식이었는데,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을 때가 많았고, 말을 함부로 했으며, 단정짓는 걸 좋아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런 식으로이야기했다. "직설적인 면이 있지만, 활달하고 대범하며 맺힌 곳이없죠." 그녀는 마치 국가공인이라도 받은 사실인 양 이야기했는데 나는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나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인면이 있어요. 정말 싫은 면이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랄한 평가에 오히려 내 쪽에서 그녀에 대한 변명을 할라치면 그녀는 내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 P154

이미 조셉 프랭클이 예순 살을 넘은 시점부터 권투장의 젊은이들은 조셉 프랭클과 함께 링에 서는 걸 꺼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링 위에서가 아니라면 권투장의 젊은이들도 조셉 프랭클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조셉 프랭클을 싫어하거나피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젊은이들의 삶에 섣부른 참견이나 충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그만큼 지혜로워서였다기보다는 그가 타인의 삶을 문자 그대로 타인의 삶으로 받아들였기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링 위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 P215

나는 그녀의 편견에 기겁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도 없이 하다니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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