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한숨 - 내가 경험한 중국, 문학, 그리고 글쓰기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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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 그 수긍하기 힘든 수준의 특이한 행동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중국소설을 읽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다. 중국 소설을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접해본 나는 그들이 사고하는 방식의 기저에 깔려있는 공산주의, 문화대혁명, 정치적 체제와는 무관하게 기형적으로 성장한 경제를 체험하며 굳어진 사고방식 등을 알아가면서, 그러한 양립할 수 없을것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중국식의 행위를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옌롄커라는 작가가 교보에서 강연했던 ‘침묵과 한숨‘의 같은 타이틀을 가지고 책이 출판되었을 때, 2019년의 그 강연에 참석했던 나로써 이 책은 당연히 열독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강연에서 작가가 수차례 강조했던 자신의 ‘유약함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으로 이해하고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다양한 작가의 관점과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테니까.
옌롄커에 대해 중국인 중에 의식이 깨어있는 지식인이라는 수식어는 중국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옌롄커가 묘사하는 중국인과, 내가 체감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좀 더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라는점과, 사회적으로 용인되거나, 혹은 그러지 못한 세속적으로 합의된 품위가 있을 뿐, 인간의심리라는 것이, 본성이라는 것이 지역과 나라마다 크게 다를 것이 없으니까.
작가가 경험한 중국이라지만, 몇 개의 사상적인 부분, 숨기고 싶은 굵직한 사건 사고, 힘의 논리를 한국에 맞춰 각색을 한다면 어느 한국인이 경험한 한국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건 중국에 대한 중국 지식인의 이야기이다. 한국의 모습도 빤하게 보였지만, 중국에대해서 좀 더 쉽게 이해하여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이리하여 나는 너무나 일찍 어둠을 이해하게 되었다. 캄캄한 어둠은 일종의 색깔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중국인들의 피할 수 없는운명이자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 P17

글쓰기가 존재하는 의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존재를 피하게 하는 것이다. 나와 나의 글쓰기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던 그 맹인처럼 어둠 속을 걸으면서 그 유한한 불빛으로 어둠을비춰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 어둠을 보고서 확실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빛나거나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P22

그리고 기억상실에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선택적 포기와 잔존’이 포함된다. 심지어 ‘기억에 대한 오늘날의새로운 창조’도 포함된다. 그렇다. 바로 이런 기억상실의 상황이 오늘의 중국에서 한 세대의 아이들을 기억의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역사와 현실, 과거와 오늘이 전부 기억상실의 상태에 처해 있다. 한 세대 사람들에 의해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애써 흔적을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망각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억과 망각, 진실과 기억상실이 매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언어와 문자, 두뇌 속에서 충돌과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줄곧 역사와 인류의 기억이 결국에는 일시적인 망각을 제압하고 양심과 진실로 돌아오게 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였다. 오늘의 중국에서는 망각이 기억을 이기고, 허위가 진실을 이기면서 억지로 역사와 논리가 연결되는 사슬과 접합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하여 방금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는데도 그 일은 놀라운 속도로 선택적인포기와 망각을 거치면서 진위를 구별할 수 없는 파편만 남아, 사회와 생활 그리고 사람들의 머릿속을 떠돌게 된다. - P33

"내가 말을 할 수 없다면 항상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는 모르지만 무슨 말을 하면 안 되는지는 안다." - P38

우리는 이따금 "침묵은 일종의 소리 없는 반항이다"라면서 침묵에 대해 고상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은 어디까지나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벙어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묵이 오래 지속되면묵인이나 인정이 혈루에 스며들어 습관이 되기 쉽고, 이것이 기억상실이라는 국가의 악랄한 조치의 조력자가 될 수 있으며, 강제로 기억을 상실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동조자나 지지자가 될 수 있다. 묵인하다보면 인민 전체가 기억상실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는 어느한 국가의 독특한 특징도 아니고 고유한 현상도 아니다. 세계의 모든 독재 및 권력 집중 국가 혹은 권력이 집중된 역사의 단계에서는이처럼 밧줄과 쇠사슬로 언어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기억이 양호한 지식인들은 우선 침묵과 기억상실의 상태에 몰리며, 점차 집중된 권력에 의해 통치되고 구금되는 시간 속에서 기억상실을 민간과 사회 기층, 백성의 생활로 확대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다음에야 이런 강제적 기억상실의 대업이 막을 내리게 된다.
역사가 아주 완벽하고 아름답게 다시 쓰이게 되는 것이다. - P39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발생했던 나라에서는 사람과 아이들 모두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경제와 강대해져가는 국력에 대한 들뜬 환호 속에서 이런 일을 낯설게 여기면서 점차 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이 수많은 목격자에게는 다른 세상의 몽경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용솟음치는 뜨거운 피를 주체하지 못해 현장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도 지금은 인생에 성공하거나실패한 중년이 되어 그때의 일을 어리석음‘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조와 기억상실에 대한 만족이이미 개인의 운명과 집단의 기억,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처절하고 치열했던 고통의 상처를 단절시키거나 덮어버린 것이다. - P37

유럽 문학 가운데 의식의 흐름 소설과 프랑스의 누보로망은 중국 작가와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때문에 오히려 비판은 더 어렵고 예찬은 더 쉬웠다. 우리 앞에 유명브랜드의 값비싼 명품 의류가 놓여 있지만 이를 입으면 몸에 어울리지 않고 쾌적하지도 않거나 아예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명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몸에 걸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외래사조에 대해 중국 작가와 독자들은 감히 아니다라는 가치 판단과의사 표현을 하지 못했고 할 능력도 없었다. - P84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사람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가장 통속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어머니와 아내가 동시에 격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고, 그중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하는 양자택일의 곤경이다. 이런 질의를 던지는 사람은 사전에 미리 도덕적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내를 먼저 구하든 어머니를 먼저 구하는 답변하는 사람은 도덕의 타액 속에 엄몰되고 만다. - P127

작가가 현실에 기초하여 가장 진실하게 인간의가장 깊이 있는 영혼을 묘사하는 것은 원래 하늘과 땅의 가장 본질적인 원리에 관한 일이자 신이 작가에게 부여한 책임이자 의무다.
이 점을 포기한다며 작가는 존재의 필요성을 잃게 된다. - P172

이런 일들을 통해 내게 처음으로 권력을 느끼게 한 것은 권력 자체뿐만 아니라 타인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와 힘이었다. 바로 그때부터 나는 권력에 대한 일종의 미혹을 느꼈고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 P201

이것이 바로 권력이다. 이것이 바로 권력의 필연적인 존재로부터나오는 두려움이다!
권력에는 사람과 사람의 운명에 대해 마음대로, 편의대로 바꾸고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마력魔力이 담겨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마력에 무한히 미혹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를 무한히 두려워한다. - P206

물론 우리는 깨어 있어 마오쩌둥 연설의 필사를 거부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쉽게 필사에 나섰던 사람들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세속을 인정하고 존엄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격이 아닌 권력에서 존엄을 얻고자 하는 작가들이다. 중국 작가들이 존엄을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속적인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세속적인 삶을 인정하려면 또 반드시 체제와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고 의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많든 적든 권력과 명예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국 작가들이 필연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노선이다. - P272

물론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붙잡을지는 대부분 어떤 한 가지 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기보다는 종종 수많은 일의 축적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떤 사건이 갑자기 발생한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포기와 집착이 축적되어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하나의 도화선이 된 것일 뿐이다. 내가 젊었을 때 덮어놓고 돈과 명리, 권력을 추구하거나포기했던 것도 내 생활 속에서 일어난 무수한 일이 축적된 결과였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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