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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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화하면서 과거의 사고방식이 선과 유리된다면 과거의 행적들이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고 폐기되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한 영화가 흑인에 대한 묘사가 문제가되어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보도를 본 적 있는데, 과거의 작품이 존재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우리는 흔히 ‘기억하고 싶은 과거만 기억한다‘는 자기편향과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렇다고 구시대적인 세계관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대한 지향점을 잣대로 고전작품에 대한 해석을 다시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닐까.

어느 설문조사에 50-60대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고전에 이 책이 올라와 있어 의무적으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무적인 독서는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해설을 읽는 순간까지 지난한 인내의 시간이라 할 만한 독서가 되었다.
우리의 386세대들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벌여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소수자에 대한 차별엔무감하고 젠더감수성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권력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분노는 자신들이권력을 쥐게 되면서 온건하게 가라앉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자신의 민주화 운동에대한 보상을 매개로 정당화 된 듯 하다. 권력에 대한 저항은 자신보다 상위의 계층에 집중하지 하위계층의 현실따위는 관심이 없다. 이들이 조르바의 즉흥적이고 윤리와 질서에 얽매이지않는 자유분방한 행동과 사고에 열광한 것은 히피적인 감성에 몰입할 수 있었던 당시 사회의기류에 편승한 결과이며, 억압에 대항하여 자유를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리만족이었던 것이다. 그 이면에 조르바의 여성에 대한 봉건적이지만도 못한 그릇된 사고방식은 문제 제기 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사상에 감명깊게 절어잇는 순간에 여성의 그릇된 가치관을문제삼으라니 무슨 분위기 잡치는 막말이냐라고 격노할 것이다.
지금 시대에 필독서로 거론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선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때문일 것이다.

조르바를 디오니소스적이라고 신화와 결부시켜 해석하는 리뷰를 봤는데, 그런 비유가 요구되는 소설을 읽으라면 차라리 헤세의 ‘지와 사랑‘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별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우리 이별은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을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고 선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온몸으로 땅을 쓰다듬는 뱀은 대지의 모든 비밀을 알 수밖에 없기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뿐.

나는 행복했고,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는 동안에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오직 행복한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볼 때에만 우리는 갑자기 - 이따금 놀라면서 - 그 순간이 얼마나행복했던가를 깨닫는다. 그러나 이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놀라운 힘은 신적인 힘이다. 모든 인간의 내부에 신성의 회오리바람이 있고,
바로 그래서 빵과 물과 고기를 사상과 행동으로 변환할 수 있는 것이다. 조르바의 말이 옳았다. 먹는 걸로무얼 하는지 가르쳐 줘봐요.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줄 테니! ]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못했다. 나는 비겁하게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서 할 일을 다했다고 믿고 싶어 했다.

[ 무슨 음식을 특히 좋아하십니까, 영감님?」
[ 아무거나 다 좋아하지요.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하는 건 큰 죄악입지요. 」
[왜요? 골라서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
[ 안 되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왜 안 됩니까?」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지요. 」

[ 모든 문제가 일을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을 박을 때도 한 번에제대로 때려 박는 식으로 해나가면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들충이 악마를더 미워하십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등불을 껐다. 그리고 내 졸렬하고도 비인간적인 습관에 따라 다시 한 번 현실을 왜곡하기시작했다. 현실에서 피와 살과 뼈를 제거하여 추상적 관념으로 환원시키고, 그것을 일반적 법칙들과 연결시켜지금 일어난 일은 결국 필연적이었다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 나아가, 오늘의 비극은 우주적인 조화(調和)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거라는 최종의 가증스러운 위안에 이르렀던것이다.

외적으로는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외적인재앙이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삶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사색과 행동 등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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