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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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김금희 작가의 책은 어렵게 쓴 책은 아니지만 쉽게 물 흘러가듯 읽히는, 가독성 좋은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이 짧지도 않고, 김금희 작가가 표현하는 단어의 선택과배열, 부사의 위치선정 등이 내가 쓰는 표현과는 결이 달라 마냥 술술 넘어가지는 않았던 것다. 그렇게 김금희 작가의 책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장단을 늦추다 보면 서서히 작가만의 세계에 도달해 가는 재미가 있었다.

산문집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무래도 최근에 가장 큰 이슈를 몰고 왔던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기사를 통해 보았던 작가의 목소리가 인상이 깊었고, 그 권위에도전하는 정신이 너무 중았다. 이왕 사는 김에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져 평소 동선과 벗어나 있는 동네서점까지 가서 책을 구입해 왔다. (물론 책을 읽기까지는 꽤오번 시간이 걸렸나 보다.)

에세이는 공격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은 따듯한 미온수 정도의 느낌이라고할까. 이런 온도로 자기만의 색을 드러내는 작가라니, 이런 편안함이 필요한 순간보다는 요구되는 순간이 있다면 김금희 작가의 책이 적절할 것 같다.

냉담하고 이기적인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에게는 매순간이 마음이 베이는 순간이었고 그 원천적인 상실의 경험은 엘튼 존을 특별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로 만든다. 생각해보라, 가정이 세계의 전부인 아이에게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모든 일들은 어른보다 더 섬세한 감정의 파동을 남긴다. 부모가 함부로 내려놓는 물컵마저도 때론 아이들에게 문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 P43

그런 사랑의 어려움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아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매번 우리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 P81

론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 출판계의 흔한 386이었던그는 나머지 강의 시간을 1인 출판으로 시작한 자신이 어떻게 돈키호테식의 저돌적 도전으로 그 당시 유명했던 베스트셀러 뭔지는 밝힐 수 없다 - 를 만들었는가를 설명하는 데할애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책에 자료 사진이 필요하면 편집자가 나가서 직접 찍어라, 필요하면 자기 자신이 사진 모델이 되어라, 하는 식으로 다분히 비용 절감 차원에서 편집자의 업무를 하염없이 늘리는, 늘리고 늘려서 대체 내가 이런일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질 틈도 없이 부연 안개처럼 야근과 격무가 노상 깔려 있는 출판사의 노동조건에 한껏 힘을 실어주는 말을 강조했다.
당시 그가 터뜨린 베스트셀러는 자기계발서였고 그것은평소 습관이 당신 인생을 좌우한다는 식의, 아무리 깊은 밤이 되어도 막무가내로 또렷이 빛나는 신호등처럼 선명하고단순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었는데, 그것을 전달받는 독자나 그것을 만드는 편집자의 노동에 대해서만은 경계 없음, 모호함, 낭만성 따위를 믿는다는 것이 씁쓸했다. 어느 날은그의 말이 기만적으로 생각되었고 어느 날은 책이 지닌 물성을 간파한 선견지명으로도 여겨졌다. - P121

어제는 눈이 온다고 하더니 비가 내렸다. 사실 오후에 일기예보를 들었을 때는 눈이 오지 않기를, 무언가가 낙하-하여야 한다면 차라리 비이기를 바랐다. 눈은 비보다 더 부피를 가져서 도시를 채울 때면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흩날린다. 눈이 도시를 채우고 채우는데 왜 마음은 흩날릴까. 그것이 강하게 도시를 덮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만드는 동안 도리어 내 마음이 풀풀흩어진다는 건, 그렇게 어떤 부피를 상실해간다는 건 이상한일이다. 그렇게 잃어버리는 나라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누구일까,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 P129

나는 지금 당신과 내가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하면서 적는거야. 그러니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다했던 내 일, 내 작업, 내 직장, 내 노동이 더이상 즐겁지 않을 수 있다고말하기 위해서. 그 느낌은 무엇보다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겠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과 태도에 날카로워지고 상처받았어.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해하다가 더 시간이 지나면서무력해졌을 거야. 더이상 상처조차 패지 않는 단단한 체념. - P129

하기는 타인에게 선의가 있음을 선뜻 믿기에는 세상이 나쁜 게 사실이다.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어머니에게 선물하라고 꾀더니 허가도 나지 않은 재료로 약을 만들어 팔지 않나, 당신이 돈을 잃게 될까봐 그런다며 접근해서는 은행 직원, 경찰 등을 사칭해 돈을 털어가지를 않나. 그렇게 함량 미달의 제품을 속여 팔거나 보이스 피싱을 하는 건 이제 흔하디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빤한 속임수에 왜 넘어가느냐고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고있는 어떤 윤리나 합의보다는 음모론적 시각이 현실 판단의기준이 된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것, 그 이면에 숨은 악의가 있고, 그런 악의를 간파하지 않으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그렇다면 불신과 불의가 모든 행동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선의를 믿는 일이란 좀 과장하면 일종의 모험이 아닐까. 믿음으로써 입게 될 손해를 감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현실이이러니 우리의 불신을 그저 탓할 수만도 없을 듯하다. 하지만 탓할 수 없다고 해서 옳거나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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