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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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작가의 소설이다. 주로 믿는 점은 감정의 복선을 밑바닥에서 절대 위로 띄우지 않고 항상 먹먹하지만 결코 기분 나쁘지 않게 동시대의 삶을 관철하게 해주는 작가라는 것. 그래도 김애란의 소설은 나를 울리지는 않았는데 몇 번 울어버린 것 같다.
김애란은 인생을 통찰하게 해주는 (가령 좀 한심스러울 정도로 직업정신이 투철한 방송작가와 아름이의 대화장면 같이) 인간 본성의 신랄한 공격을 담담하게 풀어내는게 주특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먹먹함이라니.
나이 듦에 대해서, 늙음에 대해서 아름이와 장씨아저씨 같이 대조적인 시선을 통해, 또 너무나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늘 곁에 있지만 찰나의 지나버린 순간에서야 문득 깨닫게 되는 늙는다는 것에 대해, 죽는다는 것에 대해.

어머니는 이상한 듯 갸웃거렸지만, 그러고는 그걸 또 금방 잊어버렸지만, 나는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그녀들은, 아마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활달함 혹은 친절함이란 누군가와 무의식적으로 이별을 준비할 때 나오는 태도 중의 하나니까. - P41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기적이라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 중열일곱을 넘긴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어왔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 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였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 P47

더욱이 세상물정 모르는 얼굴은 딱 열일곱살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눈빛, 두 눈 속에 담긴 기운이 어딘가 달랐다. 그 속에는 이제 막 한 존재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피로와 슬픔, 그리고 자부가 묘하게 엉겨 있었다.
‘그런 걸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고민하다 그런 걸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그냥 부모의 얼굴이라 부른다‘ 라는 문장을 이어붙였다. 부모는 부모라서 어른이지, 어른이라 부모가 되는 건 아닌 모양이라고. - P78

"이 물만 해도 그래. 우리집은 대수가 보리차 좋아해서 물 끓여먹거든? 근데 봐봐, 밥상에 물 한잔 올려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절차가 필요한지. 물 끓여야지, 식혀야지, 주전자 씻어놔야지, 물병소독해야지, 병에다 다시 물 담아야지, 냉장고에 넣어야지…… 근데 그렇게 끓인 물이 또 이틀을 못 가. 예전에 물 마실 땐 아무 생각없었는데. 참,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어 진짜, 나도 물 마실 때 그런 생각 안하는데." - P83

‘고요‘라는 단어를 읊어보았다. 그것은 곧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기척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는 동그라미를 만들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0계급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0계급이무언가 하고 있었다. - P199

그러자 문득 무언가를 가지려고 하는 만큼,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것 또한 욕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했으면서 아무것도 안 가진 척하는 것도 기만일 수 있다고……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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