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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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이건 어느 상태이건 의도치 않게,
예상하지 못하게 밀려드는 감정들이 있다. 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이라니, 골키퍼가그런 상황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는 아니었나 보다. 무엇인가 만들어 낼 의지는 없는 상황에서 무엇인가 다가올 것 같은 불안. 그런 감정의 서사를 따라가며 약간 (현재 내 상황에서는) 사치스러운 ‘불안함‘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던 독서였다.
서평에서는 서술 중심에서 내용 중심으로 변모한 한트케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내용에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서술에 감탄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가깝다. 카뮈,
카프카, 베케트부터 남미 문학인 마르케스, 보르헤스 등 다양성, 새로움의 상징이 되는 작가들의 작품(국내라면 한강, 김봉곤 정도랄까?)을 접하면서 독자들에게는 ‘이해‘ 보다는 ‘읽기‘에 집중하게 되는 독서의 분야가 있는 것 아닌가.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관중들은 골문 뒤로 달려갔다.
"골키퍼는 저쪽 선수가 어느 쪽으로 찰 것인지 숙고하지요."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그가 키커를 잘 안다면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죠. 그러나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도 골키퍼의 생각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골키퍼는,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공이 오리라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러나 키커도 골키퍼와 똑같이 생각을 해서 원래 방향대로 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겠죠? 이어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블로흐는 모든 선수들이 차차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페널티킥을 찰 선수는 슛 지점에 공을 갖다놓았다. 그런 다음 그도 뒷걸음질로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갔다.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차게 됩니다."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키커가 맹렬히 달려왔다. 환한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골키퍼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페널티 키커는 그의 두 손을 향해공을 찼다. - P120

흔히 우리는 문학작품이란 숙련된 작가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해야하고, 독자는 그것을 읽고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아니, 우리 스스로가 알았다기보다는 그렇게 교육된 것이다. 그런데 한트케의 실험작은 형식과 내용 가운데 의도적으로 내용을 무시하고 있다. 내용보다는 서술이 우선인 문학 작품이라니, 18~19세기의 문학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과는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20세기의 이름 있는 작품들, 즉 카프카의 『변신』이나 까뮈의 『이방인』,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등이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인내심 깊은 원시시대의 독자나 인문주의 시대의 독자라 하더라도 마침내 자제심을 잃고 격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문학은 감동과 아름다움이 충만한 것인데, 도대체 이게 뭐냐는 심정에서 소위 비난의 봇물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한트케도 이러한 실험 작품을 시작으로 다수로부터는 혹독할 정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소수에게는 새로운 문학 세계를 열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와 그의 서술 기법이 실험적인 것에서 전통적인 것으로 돌아선다. 무시했던 내용을 다시 복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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