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등을 외치고, 갑질과 차별에 분개한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이 무시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지내가 다른 이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 P229

어느 방송에서 흙수저, 금수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워낙 이슈였던 터라 어딜 가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다.
그중 한 패널이 우리가 식당에 들어갈 때숟가락을 보고 식당을 고르는 게 아니듯숟가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떠먹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숟가락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걸 떠먹으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멋진 비유이자 위로였고, 선한 마음으로 이야기한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흙수저, 금수저에 대한 이야기는진짜 숟가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본질은 세습 자본주의에 있다. - P197

우정의 기초와 세상에 대한 신뢰를 다져야 했던 그 시절,
우리는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성적을 위해경쟁적 대인관계를 독려 받았다.
그건 타인을 신뢰하는 대상이 아닌 경쟁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했고,
우리의 공동체 의식을 말살시키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초집단주의 사회임에도
OECD의 ‘공동체 지수’도 ‘사회적 관계‘도 모두 꼴찌를 차지했다. - P168

사회가 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개인주의 사회가 주로 개인의 죄책감‘을 사용한다면,
집단주의 사회는 주로 ‘수치심‘을 사용한다.
죄책감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면,
수치심은 타인을 통해 바라본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통제하며,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도록 요구받는다.
역지사지라는 가르침 속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고,
그 결과 "보란 듯이 잘 살겠다"
"남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같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다. - P164

당시에는 개인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억압하고도리라는 이름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이것은 아무리 울화가 치밀어도 화합을 위해희생을 강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였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미덕이 있었는데 바로 근면 성실이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몸이 아프거나 다쳐도빠짐없이 학교에 가면 개근상장을 줬고,
칠판 위에는 ‘근면 성실‘이라는 급훈이 쓰인 액자가 걸려있었다.
왜 그랬을까?
근면 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배운 건우리 사회가 제조업 기반의 사회였던 것에 있다.
제조업에서는 창의력이나 개성보다근면함과 성실함이 가장 필요한 자질이었으니 말이다. - P85

내 동생은 늦둥이다.
막냇동생은 부모님의 남은 숙제랄까.
엄마는 동생이 자리 잡고잘 사는 걸 봐야 자신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 마음이 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행복하면 좋겠는데,
엄마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동생이 행복해야 한다.
그 말은 엄마의 행복이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뜻이다.
그건 자기 행복의 결정권을 문밖에 두고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주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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