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싫다." 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P121

"다들 이렇게 살아. 다른 회사도 그래. 요즘 저녁 시간 전에 퇴근하는 사람이 학교 선생 말고 누가 있냐? 너도 취직하면 알 거야."
"호주에선 안 그래."
내가 반박했지.
"호주에서도 그럴걸. 너도 호주에서 제대로 된 사무직 일은 해 본 적 없잖아. 호주에서도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 의사 같은 사람은 정신없이 바쁠걸?"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기자나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변호사, 의사 같은 ‘진짜 직업들이 있고, 그 아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직업들이 있다는 거지. 내가 직장에 다니더라도그게 토플 문제지나 조선 업체 정보지를 만드는 일이라면 지명이는 아마 그걸 ‘진짜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나는그냥 살림하는 여자인 거지. 그런 건 싫어.- P159

"만약 남극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파블로를 잡아다 헬리콥터에 태워서 하와이에 내려다 줬다면…… 파블로는 그래도행복했을까?"
내가 물었어.
"어쨌든 하와이에 갔잖아."
지명이 고집했지.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P160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내가 외국인을 밀치고 허둥지둥 지하철 빈자리로 달려가면, 내가 왜 지하철에서 그렇게 절박하게 빈자리를 찾는지 그 이유를 이 나라가 궁금해할까? 아닐걸? 그냥 국격이 어쩌고 하는 얘기나 하겠지. 그런 주제에 이 나라는 우리한테 은근히 협박도 많이했어. 폭탄을 가슴에 품고 북한군 탱크 아래로 들어간 학도병이나, 중동전쟁 나니까 이스라엘로 모인 유대인 이야기를 하면서, 여차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눈치를 줬지. 그런데내가 호주 와서 이스라엘 여행자들 만나서 얘기 들어 보니까얘들도 걸프전 터졌을 때 미국으로 도망간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더구먼. 학도병들은 어땠을 거 같아? 다들 울면서 죽었을걸? 도망칠 수만 있으면 도망쳤을 거다. 뒤에서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러지 못한 거지.- P171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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