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의 말은 조롱과 조소마저도 따듯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글에서 배어나오는 작가의 성품은 온갖 지저분한 말을 갖다 붙여도 더러워지지 않는 건가.
다른 작가라면 충분히 날카로웠거나 슬픔에 사묻혔을 법한 내용인데도 그냥 잔잔하게 독서가 흘러갔다.

"그런데 말이죠, 아무리 단골이라도 말이죠, 꼭프라이드를 기본으로 한 뒤에 반반을 선택한단말이죠. 이게 나는 사람 심리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항상 매사에 디폴트는 있어야 하기에 그다고요." - P13
우리는 너무 귀찮아서 이직도 할 수 없고 귀찮아서 이사도 갈 수 없고 귀찮아서 누구 대소사 챙기기도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 귀찮음이 우리의 생활을 묘하게 안정시키고 있는 것도사실이었다. - P17
잘 지내, 미래는 현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긴 현재일 뿐이야. - P22
우리가 처음으로 포옹한 장소도 여의도에 면한한강 둔치였는데 그렇게 해서 매기를 14년 만에다시 안았을 때, 손을 잡고 입술을 가져다 댔을때 나는 우리가 왜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진을 빼듯이 걷고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어떤 것이 기진맥진해져서 완전히 투항하기를 바라면서 무언가와 싸우듯이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 P18
매기가 나와의 그 섹스 없음에 경종을 울리며사라지고 만 일은 그냥 하나의 연애가 끝이 난 게아니라 내 인생 전체의 신념이 야유를 받은 것이었다. - P44
"네, 힘이 있으니까 화나고 긴장하고 굳고 괴롭고 하는 거라고요. 울화도 활력입니다. 하는데, 요즘 통 글을 못 써서 힘이 없나 보다 기력이 떨어지나 보다 했는데……. 내년에 책을 낼 수 있을지모르겠어요. 무엇보다 내켜야죠." - P57
인파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보면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더러는 좀 비켜주세요, 밟으면 어떡합니까, 앉읍시다, 하는 항의도 퍼져 나갔는데 그 사이에서 한 남자가 유인물을 한장씩 나눠 주며 아주 인자하게 우리 탓이 아닙니다, 다 정권 탓입니다. 우리 탓이 아닙니다. 다 정권 탓입니다, 하고 있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때는 설핏 웃었지만 그렇게 누구 탓이라고 하면신기하게도 무화되는 분노의 특성이 생각나면서내 얼굴은 천천히 굳었다. - P110
문상과 캠핑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일상 전체로 따지면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타본 캠핑카는 현실의 것들이 축소된, 그래서 어딘가 장난감처럼 귀여워진집에 가까웠다. - P111
가서 그 불편하고 죄의식이 일고 감당할수 없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대면하리라. - P112
나는 우리가 자꾸 어긋나고 상대를 향한 모멸의 흔적을 남기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매기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숙명처럼 가져갈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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