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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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긴장감과 박진감에 몰입돼버렸다. 문장의 호흡이 긴 작가라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 긴 문장이 지루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유려하다.
아쉬운 점은 투우 아버지의 방역의뢰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넘어갔다는 점, 후반부 투우의 조각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증오심의 감정 서사가 빈약하다는 점(의뢰인을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 같다), 투우와 조각의 결투장면에서 그들 과거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장면이 너무 듬성 듬성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주인 여자의 전체적인 인상과 몸 상태는 자식을 공부시키는 데에 올인하고 자신은 돌아볼 틈 없이 진통제로 근근이 연명하다 손쓸 수 없을 지경이 된, 보편적이며 통속적인 어머니들의 희생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사소한 권력이 다른 이에게는 증오를 넘어선 제거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단둘이라니, 아들과 딸, 이 무한한 단순성과 합리성을 겸비한 한 쌍이라니. 간결 속의 풍요를 응시하고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소녀는 자기가 떠나온 곳이 돼지우리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린 몸집에도 끼어 잘 데가 마땅치 않아 모로 누워 칼잠을 자고 막내 아기까지 같은 자세로 누나들의 가슴과 등 사이에 끼여 자다가 질식할 뻔했을 만큼 비좁고 더러워서만은 아니었으며, 치열한 아귀다툼과 함께 먹을 입만 남은 곳에서 공간과 곳간에 비례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애새끼들을 싸질러 놓은 친부모의 행위가 흘레만 붙여놓으면 꿀꿀거리며 새끼를 까는 돼지 같았다는 생각이, 당숙네를 보고서야 비로소 든 것이었다. 아이들이 한 무더기로 뒤엉켜 자는 일곱평 집 안에서 부모는 대체 그 짓을 어디서 어떻게 하고 막내까지 뽑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던 데다, 누구나 그렇게 아이를 놓고 살아야만 하는 줄로 알고 이유 불문 아이란 아들이 나올 때까지 – 그 아들을 어디다 써먹을 건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 계속해서 낳는 게 당연한 줄로 알고, 그러다 집안이 더 심하게 기울어져서 당장 손 붙잡고 굶어 죽게 생겼으면 비로소 새끼들 가운데 누군가 제일 덜떨어지거나 얼굴이 못났거나 많이 처먹어대는 녀석을 골라 다른 데다 보내버리면 그만인, 근대화가 덜 된 무식쟁이들이 돼지말고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두 명이 쓰던 부엌방도 운동장이었는데 생활수준이 올라가니 이제는 바라는 범위가 한 뼘 더 늘어나고 자신이 친척으로서 이 정도 대우는 받아도 괜찮지 않느냐는 은밀한 신분 상승의 감각, 돼지우리에서 벗어난 자신의 물리적 도약을 감사하며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음에도 막상 눈앞에 각도가 다른 현실이 펼쳐지자 자신의 겸양이 그저 기대하지 않는 척이었을 뿐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말하자면 소녀는 긴장이 풀렸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당신 지금 자기가 뭐 하고 있는지 정말 알기나 해? 아는 건 단 하나, 목적지는 몰라도 하여튼 가고 있다는 사실뿐이지."

당신은 얼마든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할 자유가 있어. 근데 자격은 없지.

"자네가 계속 일을 해나갈 팔자라서가 아닐까. 이보시게, 하나의 조직이란건 말이지. 어느날 갑자기 두목이라는 놈이 인생무상이다 만사 싫어져서 손 씻겠다며 아랫것들 불러놓고 오늘부로 우리 해산합시다,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닐세, 두목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조직을 흩어버리거나 그 조직이 가는 길을 웬만해선 바꿀 수 없네, 그 점에 있어서는 조직의 가장 막냇동생과 다를 바 없지, 한번 구축된 조직은 이미 더 큰 질서 안에 포섭이 되어버리고, 그다음부터는 그 질서가 조직을 움직이는 것일세. 기계의 부품이 모두 빠지고 더 이상 대체할 게 없어지기 전까지는 말일세, 물론 대체룸은 소모되는 속도 못지않게 양산 속도도 빠르지."

그 아이가 빈정거릴 때는 상대방에 대한 뚜렷한 적의보다는 있는 힘껏 팽창된 자아가 엿보였기에, 지나고 나면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평균수명이 아흔이든 백이든 그것이 누구 자체의 건강을 재는 척도는 되지 못한다. 평균수명이 높아진 것은 다만 죽음이 급습하는 시기를 과학과 의학이 지연시켰기 때문이고 그것은 효율이나 질을 완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생명 연장의 꿈에서 ‘연장’에 포인트를 맞춘 것으로서 평균수명100세 시대의 노인이란 어디까지나, 소원을 빌 적에 ‘젊은 모습으로 예쁘게’라는 옵션을 잊어 주름 잡힌 얼굴과 흰 허리로 구차한 영생을 잇게 된 예언 무녀의 운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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