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의 소설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감정을 살아나게 한다. 주옥같다.
현실에 대해서, 그 현실의 비극에 대해서.

제도권 안에서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태어나서 두 부모의 보호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고 취업을하고 연애를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노년을 맞는 재생산 주기에 따른 생에 서사에 맞는 ‘제도’를 따르며 보호를 받고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러한 제도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서.
우리가 제도권 안에 살아남아 있으면 각종 보호막을 통해 삶을 일구어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은행에서의 대출이라던지, 정부한태 받는 복지라던지, 주변 사람들의 대우라던지.(웃긴 건 차별적 복지마저 정말 밑바닥에 기어 있는 삶에는 손이 미치지 못한다. 못사는 것도 어느 정도 제도권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살아있다고 다 인간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을 떳떳하고 남부끄럽지 않은 삶이라고 한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당당한 자식이 될 수 있고, 자랑스러운 부모가 될 수 있으며, 성실한 국민이 된다는 것.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데 과연 이 세상에서 자유를 보장받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제도권 안의 한정된 옵션들 중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걸까. 우리의 자유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선을 그리고 있는 걸까.

‘그린’의 자유는 제도권의 보호막을 벗어나 소설의 화자인 엄마를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게 한다. ‘젠’ 역시 과거는 제도권 밖에서의 자유를 누리며 보통의 사람들과 남다르고 화려한 삶을 살아왔으나 요양원에서 늙어가는 노년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과거가 결국 남들에게 대리만족감이나 주는 한낱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준다. ‘엄마’역시 제도권 안에 삶을 살아왔지만 ‘젠’을 보며 제도권적인 사고에 맞서며 저항을 하고 딸의 이탈을 염려한다. 보통의 삶, 인간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대우를 받기 위해 정해진 선택사항들을 거부하는 자유는 불안할 뿐이고, 엄마의 삶처럼 성실히 제도권을 벗어나려 하지 않으려 했음에도 본인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불안한 삶이 만들어지는 세상, 비극인 것이다.
다른 장편에서도 그랬듯이 김혜진의 소설에서 개인의 의지는 제도의 권력에 맞서 비참해지는 과정을 밟는 것 같다. 쉽게 나의 혹은 남의 비극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 어떤 서사가 진실을 감추고 세상을 보통의 범주로 종용해 나가는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끔 작고 마르고 보잘것없는 이 여자의 삶이 거짓말처럼느껴진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후엔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데 평생을 허비한 사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 하나 가지지 못한 이 여자에게 내가 가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세계의 풍광과 1년 내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18p)

이런 순간 더 이상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없는처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과 말을 섞고 생각을 나누고 어쩔 수 없이 동의하면서 나도 젊은애들이 말하는 앞뒤가 꽉 막히고 편견으로 가득 찬, 세금만축내는 부류의 노인이 되는 걸까.
....
끝까지 남는 건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0p)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30p)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필요한 공부를 내가 너무 많이 시킨 걸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32p)

이 애들은 유식하고 세련된 깡패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는 주먹을 쓰는 대신 주먹보다 강한 걸 쓰는 방법을 가르쳐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뺏긴 줄도 모르고, 당한 줄도 모르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거겠지.(46p)

그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거다. (47p)

저 사람들은 감정이라 할 만한 것들을 모두 집에 두고 오는 것 같다.(58p)

딸애는 내 딸이니까, 우리는 가족이니까, 결코 그런 다정한 말은 나오지 않는 거겠지. 이 애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언제나 적다한 만큼의 배려와 예의를 보일 수 있는 거겠지. (61p)

딸애는 또 무슨 일을 벌인 걸까. 성급하고 부주의하게 또 무슨 후회할 일에 힘과 시간을 낭비하려는 것일까.(78p)

협박하듯 자식 앞에 농약을 내놓으며 같이 죽어 버리자고말하는 부모들이 있다. 실제로 자식을 먼저 죽이고 따라 죽는 부모들도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런 말을 하려는 건아니다. 다만 그 순간 그들 내부를 채운 감정들을 짐작해 보고 있다. 그런 것들이 가능하도록, 한 사람을 밀어붙이는 감당할 수 없는 기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100p)

세상일이라니. 자신과 무관한 일은 죄다 세상일이고 그래 서 안 보이는 데로 치워 버리면 그만이라는 그 말이 맘에 들 지 않는다. 저 여자는 언제 어디서나 저렇게 말하겠지. 제 자식들에게도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면 그 자식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또 그렇게 말하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 세상일이라고 멀리 치워 버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둘씩 만들어지는 거겠지. 한두 사람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크고단단하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거겠지.(126p)

오늘날 일이란 행위는 모두 훼손되고 더럽혀졌다. 그것은 오래전에 우리 세대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던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일의 주인이 아니고 그것에 종노릇을 하며 소외당하고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리고 끝내는 일 밖으로밀려나고 쫓겨나고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160p)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 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 보면 다 똑같아져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세요.(1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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