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 그러했듯이 현실의 사실적인 서술에도 새로운 걸 알고 느끼게 되는 책들이 있다. 누군가의 말이나 짧은 기사 같은 걸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 와 닿을 수 없는 설명들이다. 소설을 통해 긴 문장과 긴 상황설명과 감정묘사를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다.

소설에 빠져버리는 경우엔 두 가지 상황으로 나뉜다. 빠져나올 수 없어 계속 독서를 하는 경우와 더이상 빠져버리고 싶지 않아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 ‘다른 사람’은 후자의 경우에 가까웠다. 책을 보면서 정말 깊이 빠져버렸지만 계속 너무나 무거운 상황에 기분이 내려가 책을 몇 번 덮었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 지식을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감정도 표현도 관계도 배워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뻔하다. 사람이 너무 본능에 충실한 건 나빠서라기 보다는 배우지 못해서이다. 배우지 못한 남자들의 지리멸렬한 군상이 안타까웠다.

남성성뿐만 아니라 인간 보편적인 속물근성에 대한 냉철한 시선도 인상적이었다. 책을 보며 이 작가와는 함부로 말싸움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한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82년생 김지영’도 권장하지만 아주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접했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잘해주는 아이들.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들. 부 모님이 좋아하는 아이들, 그들과 있으면 나도 그런 애가 된 기분이들었다. 나는 춘자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송보영은 내 진심을 알아챘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렇게 나를 쥐고 흔들 수 있었겠지.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군가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게 큰 무기가 될 수있다는 걸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42p)

역시, 재력이든 권력이든 성격이든. 피해자는 뭔가 만만치 않은 걸 갖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97p)

망상이 속도를 내며 머릿속을 질주했다. (139p)

함께 산다는 건, 헤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도 같다. (158p)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물어보지 않으면 된다. 그녀 역시 비밀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으니까.(161p)

폭력의 미학. 폭력의 연쇄 사슬에걸려든 비극적 인물들, 입체적이라고 했다. 앞뒤가 불룩 튀어나온 눈사람 같은 (괄호)의 주체들. 그들을 이해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다. 아니, 수진은 그 무엇도 아름답지 않았다. 누구도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강간에 대한 감각이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이 폭력을 묘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괄호)에 붙들린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진도 누군가를 강간해야 하는가?(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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