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내가제법 특출난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나도 그저 그런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재단하는 일을 덜 하게 되었다. (차마 그만두었다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혼내거나 탓할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왕후장상의 퇴사가 따로 있다. 퇴사 관련 책의 저자를 미디어에서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미디어가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퇴사한 회사의 ‘급‘이다. 옛날의 ‘서울대 나오면 분식집을 해도 성공한다‘는 신화가 요새는 잘 다니던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신화로 바뀐 느낌이다. 그들이 버리고 나온 것이 얼마나 크고 대단했는지에 따라 퇴사의 가치가 달라진다.
그런 식의 퇴사 소비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칫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많이 가진 자는 그 자리를떠나 잃을 것이 많겠으나 당장에 생계가 곤란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게 가진 자는 가진 것이 너무 적어서 그 자리마저 잃으면 삶이 위태해진다. 그래서 쉬이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가진 것과 상관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기 삶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열을올린다. 회사 안에서 자기 삶을 찾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출근은 자유의 반대말이고, 되사는 자아 찾기의 입구이다.

결국 집도 찾기 문제가 아니라 결정 문제였다. 포기와 타협의 문제. (타협은 좋은 말인데 어쩐지 비겁한 냄새가 난다.)그래, 포기 말고 양보하자.

집을 보면 볼수록 내가 지금 얼마나 좋은 동네와 집에 사는지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좋아하는 마음도 확실히 알았다. 수고해서 고른 집이기도 하거니와 온전한 내 첫 공간이었고, 핫 플레이스가 지척인 창천동 집을 어느 집이쉽게 이길 수 있겠는가, 점심시간까지 할애해 열심히 집을 찾아보았지만 그건 ‘혹시‘ 보다 ‘역시‘에 힘을 싣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마음은 기울어진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레전부터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묻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했다. ‘좋아한다‘는 말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것 같았다. 대상을 꾸준히 사랑해야 하고,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책임을 다할 수도 없으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 같아 보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 보다 더 강력한 건 그냥 하는 마음‘, ‘계속하는 마음‘, ‘끝까지 하는 마음‘ 이다. 최고를 찍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좋은 상태를 유지한 채 쭉 가는 것. 그렇게 가는 길이 나를 만들 것이다. 이 책이 내 손에 쥐어지고 나면 괴로웠던 나보다 끝을 본 나를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냥 하는 마음이 나를 계속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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