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편을 보고 이 책에는 기승전결이 없구나라는 걸 알게되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두편까지 읽고 나니 오히려 참신했다. 감정의 선을 따라가는 영화가 그러긴 힘들지만 감정의 서술을 읊어나가는 이주란 작가의 소설은 그냥 재밌었다.
등장인물들이 나와의 정신건강 상태나 소득수준이 유사하기 때문이었는지, 작가의 문체들은 그동안 내 속에서 애매모호했던 감정들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주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게 억지스럽게 따듯하지도, 도도한 척 냉철하지도 않고, 현란하게 기교넘치는 유려함도 아니지만 속이 시원한 문장들. 그렇게 나는 작가에 대한 믿음을 굳혀갔고 이주란 작가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나는 나의 전입신고를 담당한 공무원의 아침 일상과 어젯밤을상상했다. 그리고 그녀를 불행한 일상으로 몰아넣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작 한다는게…..… 그런 거였다.(102p)

나는 내가 나의 몸과 마음과 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내가 내 몸과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그것들에게 많이 미안했다.(120p)

트윈피크스에서내가 무서워서 더는 못 올라가겠다고 했을 때, M은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조금만 더 올라가서 쉬자고 했지만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M은 한 발도 더 못 갈 것 같은 내 공포심보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더 배려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무튼나는 M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M은 어떤지 모르겠다.(137p)

문미영은 아주 적극적인 스타일로 선생들의리더 격이라고 보면 맞았다. 예쁘고 목소리가 밝았으며 유머 감각이 뛰어났고 제스처도 화려했다. 조지영이 가장 부러워하고 싫어하는 유형이었다. 상대의 속마음도 모른 채 거리낌없이 사람들을대하는 것이 부럽고 싫었다. 어느 쪽에 더 가깝냐고 물으면 조지영은 부러움 쪽에 손을 들었을 것이다. 부러웠지만 조지영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고 밝은 문미영의 모습을 매일 보면서 상처받았다. 그래도 조지영은 그런 면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줄은 알았다. 오전 시간을 거의 그런 유의 생각들을 하면서 보냈기 때문이다.(163p)

진심이었는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192p)

더 불행한 삶을 들이밀면서 같잖은 위로같은 것을 하고 싶진 않다. (235p)

나한태 말하고 기대. 괜찮아. (245p)

저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를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겁쟁이였던 거죠......... 그렇게 하면 나쁜 결과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거든요. 저 자신만 탓하면 그만일 뿐, 변하지 않는 상황이나 타인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를 할필요가 없으니까요.(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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