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남자다웠고 어머니는 여자다웠다.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부를 때 흔히 떠올릴 만한 전형성을 가진사람이다. 말수는 적은 편이고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라는 명분에 안도하면서 내면의 많은 부분을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사람, 그런 자신에게 자부심과 진절머리를 동시에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따뜻하고 산뜻했다. 전업주부지만 살림살이는 건성으로 한다. 그녀의 주업은 살림이 아니라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이었으니까. 원래부터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나를 낳고쇠약해져서 보통 사람 절반 정도의 체력밖에 없었다.(118p)

문제는 여러 젠더를 횡단할수록 어디에서 어디론가 건너가는 중인 자체가 나의 젠더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어느 책에서 이와유사한 상태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도시에 있으면 못 견디게 시골로 가고 싶고, 막상 시골에 가서 지내다 보면 숨 막히게 도시로 가고 싶어지는 것,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은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가는 이행의 시기에만 존재한다는 역설에 대한 묘사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130p)

"근데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 나도 평등의 범위가 인간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를 포함한 한국사람들 상당수가 삼겹살을 먹잖아. 퀴어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동물권에 대해서는 아주 평범한 인간인 거야. 머리로는 고갤 끄덕이지만 실천은 전혀 되질 않아. 어떤 사람들은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제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무감각하고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거, 그게 서로를 아프게 하는 거지. 편견이라는 것,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견일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눈으로 그저 자연스럽게 보고 행동하는 게 편견이야. 우리 상황도 마찬가지잖아. 우리한테는너무 아픈 문제인데 다른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서 보고 쉽게 말하지, 쟤네들 남자한테 상처받아서 저렇게 된 거야, 양육방식에문제가 있었겠지, 라는 식으로, 변태라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로어떤 사람들은 내가 신과 같은 숭고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난 그게 더 부담스럽더라고."(195p)

좀 더 멀리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이토록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왜 나의 모습은 스스로 볼 수 없게 되어 있을까? 왜 다른 사람들을 내 시선을 통해서밖에 보지 못할까?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있을까? 판단할 수 있을까?(205p)

내가 감히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착각이 미움을낳았다는 것을, 내 경험의 틀에 당신의 삶을 욱여넣어 내 방식대로 끼워 맞춰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사랑도 이해도 뭣도 아니라는 것을 이 소설을 쓰는 시간 동안 배웠다.
당신과 내가 다르다는 것. 단지 그 사실을 배우는 데 40년하 고도 한 해가 더 걸렸다.
이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이상은 밉지 않다. 겨우 그렇다.(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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