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은 과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작가가 쓰는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특히나 우주에서 온 외계인을 받아들이는 등장인물들의 이해심과 포용력이 현실적이지 않고 상당히 SF적이었다. 이상적인 망상과 동시에 외계인과 현실감각에 둔한 지구인을 통해 환경문제와 여성에 대한 논의를 다루려는 의도는 이해하겠으나 정체성 없는 국정원 직원, 얕은 사고로 결단력 하나는 빠른 빠순이의 등장, 외계 생명체를 접한 주인공의 너무나 태연한 심리묘사 등의 불쾌감으로 몰입이 되지 않는 작품이다.

너는 자꾸 변하는데 나는 정체되어 있는 걸까봐, 겁먹은 걸지도. (82p)

텐트 설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민은 꽤 편안한 캠핑의자와 작은 온열기기를 꺼내주었다. 그 따뜻한 빛이 경민과 한아 사이의 공기를 살짝 누그러뜨렸다. 한아가 기억하는경민은, 언제나 공기를 자기만의 색으로 채색하는 사람이었다. 이국적인 음식 냄새 한줄기에 한아의 손을 이끌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맨 다음 끝내 새로운 식당을 찾아냈고, 사진한 장을 보고 이름도 낯선 나라에 반해 그 나라의 모든 자료를 흡수하며 마치 전생에 거기서 태어났던 사람처럼 1년 내내 그곳 이야기를 해댔다. (90p)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 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147p)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끊임없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세계에, 예수와 부처의 세계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세계에, 테슬라와 에디슨의 세계에,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세계에, 비틀스와 퀸의 세계에,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세계에 포함되고 포함되고 또 포함되어 처절히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말이다.(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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