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출간 2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현대소설은 현재의 사실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어 어렵지 않게 잘 읽히고, 동시대적인 감성이 녹아 있어 독자의 감정이입을 쉽게해 준다. 내가 화려한 미사어구가 없더라도 한국의 담백한 현대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다. 잠시 나에게서 벗어나 다른사람의 인생과 감정에 흠뻑 빠졌다 나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찾게 되는.....

김영하 작가는 언론에서 수시로 접해서 그런지 친숙하지만 정작 소설을 읽어본적이 없었다. 이 유명한 작가의 책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게 항상 서점을 지나면서, 어플을 두리번 거리면서 하지못한 숙제가 가슴한켠에 찝찝하게 남아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덕분에 20주년 리커버 특별판은 내게 드디어 김영하의 소설을 접하게 해줄 시기적절한 기회가 되었다.

다만 첫번째 소설부터가 뭔가 당황스러우리만큼 현대적이지 않았다는게 문제(?)였다. 시대적 배경이 90년대 쯤 되었던지, 손에 핸드폰이 없어 신고를 하지 못하는 남자와 호출기, 자신의 이름을 묻는 여직원의 답변이 미스정이라던지, 코닥 필름과 사진현상, 불법 복제 CD 등 문장 하나하나가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다.(물론 모르는 건 아니다.) 이 시대의 정체성을 어디쯤에 갖다 놓아야 할까. 당연 클래식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현진건, 이효석같은 근대소설도 아닌, 꽤나 가깝지만 쉽게 공감이 되기엔, ‘아, 20년전 쯤 나의 부모세대들이 핸드폰이라는 신문물을 접하며 신기해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정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배경. 그래서 뭔가 동시대적인 감수성 보다는 지난 이십여년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상황을 익혀야 하는 소설. 무엇보다 김영하작가의 동안 외모가 그의 소설은 다른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 비슷한 시대적 배경과 동시대의 감수성을 느낄 거라는 선입견을 만들었을 듯 하다. (책 타이틀 자체에 2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이고, 이는 무려 20년 전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됐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뇌는 생각을 하려 들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같은 작품은 당시 90년대의 이기적이고 타자에 무관심한 (과거) 현실에 비판적인 시각이 소설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내 머리속엔 소설의 주제와는 무관한 이상한 사고회로가 돌기 시작했다. 지금 2020년대의 상황을 안타까워 하며 공동체의식이 부재한 개인중심적 사고를 가진 90년대생에 대한 당시 90년대의 이기적인 현대인들(지금의 어르신들)에 대해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에 관심을 끄고, 험난한 출근길에 망신창이가 된 직원에게 그저 회사 자원절감에 대한 보고나 시키고, 엘리베이터에 갇힌 남자를 무시하고 혼자 빠져나가는 미쓰정.

‘비상구‘에서 당시 쓰던 알아들을 수 없는 은어들을 보면서도 요즘 시대가 걱정하는 줄임말로 인한 세대간 소통의 단절은 뭐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일까 싶은거다. 저 시대의 은어도 지금은 사라지고 알고 있으면 뭔가 챙피한 촌스러운 말들이지 않나.(요즘도 저런말 쓰냐?같은.....) 곧 다가올 줄임말의 미래. 다음엔 어떤 새로운 말들이 지금 줄임말을 쓰고 있는 미래의 구세대들과의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여 지금 줄임말을 쓰는 세대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안겨 줄까.

요즘 애들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다른 의미는 없고 그저 나이적은 사람들을 지칭하여 비난하려 할 때 흔히들 주어로 선택하게 되는 말들. 요즘 애들이라는 건 뭔가를 그룹으로 지칭하여 비난하려는 한남, 김치, 된장과 같은 혐오발언과 동등선상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너무 쓰잘데기 없는 감상들로 책을 마무리했다.(환상소설을 첨가한 다른 단편들은 좀 생략하겠다)

조형사야 신참이니까 알 수 없을 테지만 내 코엔 그 냄새 가 난다. 그것은 청결한 화장실과 비슷하다.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한 바닥, 미미한 방향제 내음, 개방된 은밀함, 금세 씻겨나간 더러움 같은 것들.(43p)

잔인한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 우리의 모든은밀한 욕망들은 늘 공적인 영역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호리병에 갇힌 요괴처럼, 마개만 따주면 모든 것을 해줄 것 1처럼 속삭여대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그들이 묻는다. 이봐. 누가 나를 이호리병에 넣었지? 그건 바로 인간이야. 나를 꺼내준 너도 인그러니까 나는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어.(68p)

"화가들은 왜 그릴까요? 자동차 레이서들은 왜 경주에 나서고 작가들은 어쩌자고 글을 쓸까요? 그냥 살면 될 텐데, 어쩌자고 그들은 그토록 아무 소용 없는 일에, 기껏해야 평생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찾아올 희열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걸까요?" (127p)

방콕을 출발하여 국경도시 아란야프라텟에 도착, 간단한 입국 수속을 밟고 캄보디아 당에 들어섯을 때, 당신의 시간은 거구로 흐르고 있었다. 태국엔 당신의 이십대가 있었고 캄보디아엔 당신이 태어나가 이전의 시절이 있었다.(215p)

치료는 당신의 일이 아니다. 당신은 그저 정확히 기록하고 판단하여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면 그뿐이다. 당신은 계속 꼼꼼히그녀의 대답을 받아적는다. 열 장째의 카드를 내밀었을 때, 여자가 말했다. 열 장째니까 그게 끝이죠? 그 유치한 테스트들은 언제 없어지죠? 로르샤흐, MMPI, TAT 따위 말이에요. 나는 그 무수한 문항들에 대답했지만 나아진 건 없었어요. 로르샤흐 테스트라는 그룹사운드가 있는 거 알아요? 그 사람들 음악 들어봤어요? 앤디 워홀이 1984년에 로르샤흐 테스트〉라는 그림을 그렸던 건 알고 있나요? 유치한 그림이에요. 쓱쓱 물감들을 뿌리고그걸 반으로 접으면 끝나는 거죠. 물론 완벽한 대칭, 그러면서무의미한 그림이 되겠죠. 그걸 보면서 박쥐를 상상하는 여자의직을 상상하든 그게 무슨 무의식을 드러내주나요? 드러내주면 또 무스 도움이 되나요. 당신들이 아는 만큼 나도 알아요. 그러 니 쓸데없는 그래프는 그만 그려요.(2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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