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게는 화원의 꽃이 팔리기도 전에 시들어 죽거나, 누군가 돌을 던져화원의 유리를 깨뜨리고 도망가는 게 전쟁이나 지진보다 더 불운이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것은 어쩌지 못하는 사이 모두에게 닥치는 일이었다. 그러니 두려울 게 없었다. 모두 무사한데 자신에게만 불운이 닥치는 것, 김이 생각하는 불행은 그런 것이었다.(22p)

앞으로 여자와의 통화는 더 드물어질 것이고 간혹 이어지는 만남은 지루할 것이고 말투는 무뚝뚝해질 것이며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럴수록 여자는 더 자주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소홀하고 무관심한 김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서운함과 허전함을견디지 못해 울컥하여 화를 내고 얼마 후에는 화낸 것을 사과할 것이다. 그런 일이 얼마간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오로지 마음을 되받지 못한 것을 억울해하며 김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데 시간을 쓸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 모든 일을 되풀이할 정도로 김을 사랑하지않으며 어쩌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시에 허탈해질 것이다. 김으로서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그때 비로소 여자에게 애틋함을 느끼게 될지도 몰랐다.(26p)

그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없는 탐닉도 거의 사라 졌다. 마음이나 집중력이라는 것에도 탄생과 소멸의 주기가 있는 법 이니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녀와 내가 헤어진 것 역시. (125p)

누구도 그들에게 우 리가 공유한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다. 남들이 모르는 걸 익숙하게 알고 있다는 감각은 내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게 해줬다.(21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