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개정판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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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 실학자로 호는 다산이다. 40세 때부터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500여 권의 방대한 실학 관계 저작을 완성했으며, 경학 관계 연구권 232권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저서를 많이 남긴 실학의 집대성자다.

유배지에서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주로 당부하는 말들이었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뿐이라고 독서를 거듭 강조하고 부탁하였다. 더 이상 과거 급제에 응시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공부를 위한 공부만 하면 된다고 아들을 격려한다. 가문이 망해서 오히려 이때가 독서를 할 때라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실 것도 재차 당부한다. 항상 방을 따뜻하게 해 드리고 드시고 싶은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짜내보라고 한다. 며느리도 어머니를 위해 음식을 하면서 연기를 쏘이는 걸 지혜로운 일로 받아들이기를 당부한다. 큰아버지도 마치 친아버지처럼 모시기를 바라고 있다.

너희들이 참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것이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

참 무서운 아버지다. 두 아들은 이 편지글을 읽고 나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독서에 대한 정약용의 편지글과 효도에 대한 편지글들을 읽으면서 과연 나라면 아버지의 의도대로 따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힘든 유배생활 중에 거듭 강조하고 당부하면서 편지를 보내셨지만 아버지의 욕심을 다 감당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예전과는 물론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약용 자신은 앉아서 책만 읽고 책을 쓰면서 신체 부위가 많이 고장 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년을 유배지에서 글을 읽고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아버지가 보기에 아들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해 보였겠는가. 힘든 상황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해 내는데 아들들이 공부에 아무런 진척이 없으니 속이 타고 애가 탔을 것이다.

아들이 양계를 한다고 하니 양계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농서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라고 한다.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보면서 다른 집 닭보다 더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책을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다.

독서에 대한 편지글과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가 책의 전반적인 내용들이다.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 번을 읽어도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의미를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야 한다고 한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들에는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애잔함과 더불어 그렇기에 더욱더 큰 조급함도 엿보인다. 곁에서 가르치고 다그쳐서 자신이 끌고 나갈 수 있는데 유배 생활을 해야 하니 그 안타까움이야 글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유배당한 곳으로 아들을 한 명씩 불러 몇 달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올려보냈다. 이토록 간절함이 있는 것이다. 폐족이 되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매번 아들들에게 상기시킨다 평민으로서 배우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 되고 말지만 폐족으로서 배우지 않는다면 비천하고 더러운 신분으로 타락하게 된다.

초서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 뜻을 저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남의 책에서 간추려내야 맥락에 묘미가 있게 된다. 만약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곳이 있으면 책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한 종류의 책을 펴면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명언이나 선행 중에서 <소학>에는 없지만 <소학>에 넣어도 될 만한 것이 있다면 골라 쓰는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정약용 선생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열의는 요즘 강남 부모님들의 열정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들에게 어떻게든 서울에서 살도록 당부한다. 지금은 유배 생활 중이라서 시골에 숨어 살도록 하고 있지만 계획은 오직 서울로부터 10리 안에서만 살게 하는 것이었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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