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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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소개해 주는 책 앞날개를 읽고 <그리스 로마 신화>로 유명한 이윤기 선생님의 딸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은 저자의 소비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저울질이다. 제목만 보고는 사는(living) 마음인 줄 알았는데 제목 앞에 작게 부제가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이다. 사는 (buying) 마음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생계형 번역가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저자의 첫 에세이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랑한 물건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혼이 깃든다고 믿는 저자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선사해 준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소비와 소유라는 행위를 사유함으로써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취향과 가치관을 고민해 나가고 있다.

책의 목차만 간단히 훑어보아도 다들 물건이다. 처음부터 읽어나가도 되고 관심이 있는 물건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나도 목차를 읽어보고 내가 제일 관심이 가는 책 1과 책 2부터 읽어보고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5년이나 암 투병을 하면서도 정말 밝게 이겨 나온 것 같은 모습이 그려진다. 36세에 암 판정을 받고 5년간 투병생활을 끝내고 지금은 완치되었다고 한다. 혹시나 머리가 빠질 수도 있다는 고민에 저자는 인조 가발까지 장만해두었다. 몇 번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답답했으리라. 완치 판정을 받은 지금은 침대 밑에 놓아둔 그 가발을 이제는 버리든지 기부를 하려고 한다.
글로 접해서 치료 과정 중에 겪었을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고통을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사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

​사는 행위만큼 버리는 행위 또한 중요하다. 버려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반대의 표현이 맞는가. 다시 사기 위해서 버려야 한다.
"책을 팔고 기부하고 버려 가면서 책장을 비우고 또 비우는 것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이 책들을 꽂아야 하기 때문이다."
p.133


그렇다. 나도 매년 말이 다가오면 책들을 정리해서 버리고 기부한다. 다시는 이렇게 많이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건 의미 없는 다짐이다. 결국은 더 이상 놓아둘 공간이 없어서 처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그 공간을 다른 책들로 채워야 하니 말이다. 잠시도 그 공간은 비어있을 때가 없다. 처분하고 얼마간은 텅 빈 공간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반드시 다시 채워야 한다는 의무라도 있는 듯 차곡차곡 다시 채워져서 어느 순간 사라지는 공간의 속도가 가팔라질 뿐이다.

​저자는 이윤기 선생님의 딸 이다희 씨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는 이유는 어쩌면 나도 솔직히 저자의 암 투병보다 '신발'에서 더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도 저자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한 사람으로 추가되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실이에요ㅠㅠ 용서하세요ㅠㅠ)

저자의 발 사이즈에 나는 진짜 깜짝 놀랐다. 참고로 나도 발이 큰 거 같은데 240mm이다. 보통 발이 정말 큰 여성이 250mm 정도인 것 같다. 이런 발 치수도 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쏙 드는 신발이 있어서 클릭을 하면 대체로 내 치수는 다 빠지고 없고 항상 남아있는 치수는 누구도 사지 않는 250mm이다.
음.... 그렇다면 발 치수가 250mm 란 말인가? 아니다. 265또는 270밀리미터란다. 어? 뭐라고? 270?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니 상점에 직접 가서 신발을 사는 것은 진심으로 피하고 싶을 것 같다. 내가 지은 그 표정을 직접 마주해야 하니 말이다. 신발을 사러 가서 매번 상처를 받을 수는 없으니까.

​당근 마켓에서 친정 엄마가 준 찻잔들을 되파는 일화도 여자들이라면 공감이 간다. 나는 차마 되팔 생각은 못 하고 결혼할 때 받은 그릇과 찻잔들을 아직도 베란다에 처박아 두고 있다. 벌써 14년째다. 심지어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시집갈 때 친정 엄마로부터 받은 그 찻잔들을 요즘엔 당근 마켓에 중고로 판다고 한다.
엄마 몰래 파는 경우도 있고 엄마와 상의해서 파는 경우도 있고. 결혼할 때 친정 엄마들은 왜 그리 그릇들을 챙겨주시는지. 살면서 내가 내 취향대로 구매해도 되는데 말이다. 저자는 이를 엄마들의 구매 욕구로 해석을 했다. 사치품보다는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들로 구매 욕구를 채우고 타당한 이유까지 곁들일 수 있다. '나중에 너 시집가면 줄 거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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