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 <월든>에서 <시민 불복종>까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문장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캐럴 스피너드 라루소 엮음, 이지형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이번이 2회독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장들은 언제 어디서 읽어도 깨달음이 크고 깊고 굵직하다.

소로가 태어난 지는 200년이 넘었고, 콩코드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지는 16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책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마치 21세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처럼 글을 썼다.

이 책은 소로의 <월든>뿐만 아니라 에세이와 다양한 소로의 글들을 활용해서 엮어 놓았다. 스토리 형식이 아니라 단편적인 글들이다. 목차만 보더라도 삶에 대한 모든 것을 통찰하고 난 후의 깨달음을 책에 모두 담아 놓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국내에 번역이 되지 않은 글들도 있어 더욱 가치롭다. 자기 계발과 자아 성찰을 위해 순서 상관없이 당장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부터 골라서 읽어나가도 좋다.

"날씨가 어떻든

낮이든 밤이든

나는 내가 처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내 삶에 각인시키려 했다.

과거와 미래라는 두 개의 영원이 만나는

현재라는 이 순간,

그 위에서 줄을 타듯

균형을 유지하고 싶었다."

p.75 《월든》, 경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는 말자.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재'는 과거 어느 때의 혹은 어제의 '미래'이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현재가 미래였던 것이고 다시 과거가 되는 것이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낸다면, 과거와 미래의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변화나 발전이 있기 위해서는 미래만 보면서 미래의 계획만 세울 것이 아니라 어제의 미래였던 오늘을 충실히 살아 주식 차트에서 볼 수 있듯이 완만한 우상향 그래프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현재를 무너뜨리지 않고 현재가 중심이 되어, 과거와 미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완만한 우상향 그래프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퓨마, 검은 표범, 스라소니, 오소리, 늑대, 곰, 엘크, 사슴, 비버, 칠면조......

이 고귀한 동물들이 사라져 가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내가

길들여진 나라,

어찌 보면 거세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p.142 《일기》, 1856년 3월 23일

자연과 생태계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소로.

소로가 21세기를 살고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 광경들을 보고 괴로워했을까. 지금 그가 없다는 걸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우리 인간은 우리가 살고자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코로나 발생 시점에서는 외출이 어려워지자, 배달 음식이 급증했다. 더불어 플라스틱 용기도 함께 급증했다. 다 먹고 난 후 플라스틱 용기들을 플라스틱 산을 이루었다.

그 플라스틱들로 자연은 파괴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서 자연을 죽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외출이 자유로워지자 쓰다 버린 마스크로 동물들이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고 있다.

새들의 부리는 마스크 끈으로 칭칭 묶여 먹이를 먹을 수 없어 굶어 죽는다. 어미 새가 아기 새들에게 먹이를 옮겨다 줄 수 없으니 함께 굶어 죽어간다.

어떤 새들은 다리에 마스크 끈이 동여 매어져 날 수가 없자 또다시 죽어간다.

심지어 바다에서도 마스크가 떠다니니 해양 생태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인간이 살고자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으니 인간의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태계가 파괴되면 결국 인간도 머지않아 함께 파괴될 것을.

어떤 사람이 아동을 학대하면 고발된다.

자신이 보살펴야 할 자연을 학대하는

사람도 똑같이 고발당해야

마땅하다.

p.150 《일기》 1857년 9월 28일

 

소로의 이런 견해는 어떠한가?

"노동자들이 그저 생계를 보장해 줄 저가의 생활용품들을 사기 위해 일해서는 안된다."

산업사회를 넘어 첨단 정보화 사회에 사는 현대인은 소로의 그 같은 지적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월급을 쪼개가며, 조금이라도 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안간힘 쓰기는 100년 전, 2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저가의 생활용품'을 공급해 주는 기업에게 감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거대한 시스템 속에 숨은 얄팍한 술수를 비난하고 있는가?

소로의 19세기적 영감은 여전히

시대를 초월하는 독특한 울림으로

특유의 가치를 갖는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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