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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평점 :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그중에 한 권인데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다. 그런데 첫 페이지부터 여성, 이혼 가정, 탈학교 청소년, 전문대 출신, 월세살이, 임신 중단 수술, 비혼 주의자라는 단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내가 원하던 글쓰기 비법의 책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궁금증이 폭발해서 일단 읽기 시작한다. 글을 읽으면서 계속 맴도는 고민거리.. 책을 읽고 무조건 서평 쓰기를 해야 한다는 나의 올해 목표대로 이 책도 서평을 쓰긴 써야 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읽는 내내 걱정이다. 그만큼 내가 공감을 못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무지하다는 껍데기가 하나씩 하나씩 벗겨진다. 끝이 없을 것 같다.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의 리뷰는 일부러 읽지 않는다. 혹시 내가 나의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견해에 휩쓸리지 않을까 해서.. 서평 쓰기의 초보다 보니 형식과 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무식하게 써 내려간다. 내 생각대로. 그런데 홍승은 작가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먼저 읽어보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무지해서 내가 이 글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사회적 현상들이 너무 많았고 책을 읽는 내내 감당이 안 되었다. 그만큼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사회 현상에 소수자들에게 무관심했다는 증거가 딱 드러났다. 작가는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더 솔직해지고 얼마나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할까.. 자신의 날것을 그대로 드러내서 사회의 부조리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문장 하나하나를 얼마나 고치고 얼마나 고심하고 얼마나 꾹꾹 눌러 썼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전체에 공감이 가는 건 아니었다.
작가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구조로 확장시키고 싶어 한다. 나도 머리로는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상들도 더러 있다. 사회적 편견에 길들여진 건지, 문화에 동화되어 버린 건지, 공교육의 폐해 때문인지 이제는 나도 모른다. 사회적 구조의 문제라면 나라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하고 변명의 여지가 생기기도 한다.
현재 나의 위치는 낯설게 보이는 모습을 인정은 하면서도 나는 싫어, 나는 아니야. 그 언저리쯤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건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담배는 여성이고 남성이고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나. 다만 담배가 몸에 해로운 건 사실이니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뱃속에서 선택권이 없는 태아에게 가하는 말 없는 폭력이다. 그러나 비혼이라면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비단 담배만이 몸에 해로운 게 아니니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알아서 챙기면 된다. 앞, 뒤 맥락 없이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상황을 제3자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를 따르기로 한다는 무언의 협약이 이미 사람들의 머리에 내재된 게 아닐까 싶다. '다수결의 원칙'이 올바르기 때문에 채택한 게 아니라 그나마 최선이라서 우리는 다수결을 따르고 있다. 다수결이 이미 고대에서 시작되었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잘못된 지식인지 모르겠다.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출처를 모르겠다)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남아 버티어 온 이 다수결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데 사람들은 옳고 그름으로 잘못 인식하고 그게 이미 내재화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러니 성소수자, 소수의 담배 피우는 여성들, 소수의 장애인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자체가 없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해 버려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감자와 고구마가 하나는 옳고 하나는 그른 것이 아니잖은가.
작가는 여성과 남성을 체크해야 하는 부분까지도 불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 부분까지는 모르겠다.
많은 작가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잘 읽은 건지 모르겠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생각해 볼 거리가 정말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