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아마 평생을 두고두고 읽게 될 고전중의 고전임은 분명하다. 터무늬없이 얉은 앎으로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으나 (사실 절반도 이해가 되지는 않지) 와닿는 묵직함이 너무 크다. 지옥편에서는 누구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책장을 넘기기가 겁이 났다. 나는 도대체 몇 개의 죄목에 해당되는지 세어보기까지 했다. 이를 어찌할꼬 싶다. 읽는내내 반성도 하고 블레이크의 생생한 삽화에 더욱 더 커져가는 두려움. 연옥편으로 넘어가서 나의 통념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연옥편에 머무르고 있는 죄인들은 지나가는 단테에게 세상으로 돌아가거든 가족들을 만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거듭 간절히 부탁을 한다. 이는 소위 우리나라에서 행하고 있는 제사 개념이 아닌가?우리는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님께 빈다. (나는 모르는 조상님이다)우리 가족들, 우리 자식들 잘 되게 해주십사고. 그런데 연옥편에서의 상황은 그게 아니다. 죽은 사람이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그렇다면 우리가 제사를 지내기 전에 우선시 되야 하는 조건은 제사를 받고 싶다면 내가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제사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도록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기꺼이 제사를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날 위해 기도를 해주지 않을 것이고 나는 연옥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나는 제사가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다. 나에게 배은망덕하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제사를 지낼 때마다 누구신지도 모르고 전혀 진심이 우러나지 않은 행사에 매번 에너지가 고갈되고 만다.'과연 나의 남편과 나의 자식들은 나도 모르는 그 분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건가?'과연... .결국 강요가 되어버린 제사는 시부모님 외에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행사로 가족간에 불화만 자초하고 만다. 살아생전 나의 행동으로 사후 나의 제사가 결정될 것이다. 이는 오롯이 나의 책임이고 자식들의 선택이다. 살아생전 나의 행동으로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름 내가 잘 살아왔다는 증거가 되니까.그 자격에 자격증을 부여해 줄지, 자격증을 박탈할지는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식들의 몫이다. 이러한 권한을 침해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