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핀시리즈 소설선 014 기억의 습지, 이혜경

기억의 습지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4
이혜경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5월

현대문학 핀시리즈 소설선 014 기억의 습지, 이혜경

역사로부터 피해를 입고도 역사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

그곳 베트남에 한국군은 씻기 어려운 상처를 새겨놓았다.
퐁니의 기억을 가진 베트남 사람은 그 시절 그곳에 있었다는 한국인을
꺼리고 경계하고 두려워할 만했다.
어느 시골 철규네 집으로 시집 온 베트남 처녀, 베트남 새댁 응웬도
조각난 베트남 말을 건네주어 반가웠던 필성이 베트남에
그것도 마침 퐁니에 있었다는 걸 알고는 웃음을 거둔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이 베트남에 상처를 입혔던 것처럼
북파공작원 출신 김은 베트남 새댁 응웬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다.

죽음은 밥그릇 가장자리에 말라붙은 밥풀때기만큼이나 흔했다.
삶과 죽음이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일을 해 돈을 벌어 엄마에게 집을 지어주겠다는 꿈,
KPOP 팬인 동생을 한국에 데려와 옆에 두겠다는 응웬의 꿈은
김의 삐뚤어진 의식에 짓밟힌다.
김은 자신에게 '이중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운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응웬을 응징한다.
외국인을 받아들인 나라, 정작 그 나라를 위해서 몸 바친 자기를 내친 나라에 대한 보복,
자신이 힘없어 당했던 설움을 힘없는 응웬에게 고스란히 표출하는 것이다.

젊은 날, 자의와 상관없이 죽음의 전선에 던져졌던 필성과 김,
그때의 전쟁과 갈등의 그림자는 노인이 된 그들의 삶에 각각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필성은 힘들고 끔찍했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어 전쟁을 추억하고
김은 생사를 건 북파공작 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라와 자신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을 증오한다.
그래서일까, 베트남에서 온 응웬에게도 두 사람의 감정이 사뭇 다르다.
기억하고 싶은 것과 기억하기 싫은 것, 추억과 증오의 차이일 테다.

어린아이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훗날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른이 된 후 겪은 전쟁과 생사를 건 싸움의 트라우마도 마찬가지.
현대문학 핀시리즈 소설선 014 이혜경의 "기억의 습지"에서도
역사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극적 이야기로 끄집어낸다.

길지 않은 낮잠결의 꿈이 40년 넘는 시간을 한순간에 치워버렸다.

어쩌면 40년 후에도 이 꿈은 누군가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상처는 그 치유가 쉽지 않고 습기 많고 축축한 습지는 쉬 마르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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