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A는 두 대의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이 구입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지급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직원의 업무편의를 위해 회사에서 지급한 것이다. 명목상 직원의 편의성 도모이지만 실질상 관리와 감시용이다. 해당 직원이 회사 어디에 있던지 윗사람들은 A의 위치를 파악하고 업무지시를 하곤 한다. 퇴근 후에도 업무용 스마트폰을 통해서 업무지시가 내려오고, 이는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처리해야한다. 사생활과 사적인 시간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고등학교 2학년 진학예정인 B는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엄마로부터 첨단 시설의 독서실을 소개받았다. B는 아침 일찍부터 학원과 독서실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독서실이 지문인증을 통해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입의 기록은 곧바로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된다. B가 언제 독서실에 들어왔는지 언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는지를 전부 기록해서 친절하게도 부모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다. 고맙게도(?) 하루 종일 공부한 시간까지 체크해서 일일 공부시간과 월별공부시간을 부모에게 알려준다. 공부하기 위한 공간이 의도하지 않은 감옥이 되어버렸다.

 

중학교 진학예정인 C는 엄마로부터 책상을 선물받았다. 독방감옥형 책상이라고 한다. 바깥에서 문을 잠글 수도 있는 통제 가능한 신형 책상이라고 한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몇 명이 이미 사용 중이고 다른 몇명은 부모로부터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C의 엄마는 C의 초등학교 5학년생인 동생 D에게도 동일한 책상을 사줄 예정이다. C는 엄마가 짜준 계획표에 따라 학원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전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갇힌 상태에서 공부를 한다. 독방감옥형 책상은 이미 독방감옥이다.

 

 

#2.

파놉티콘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레미 벤담이 생각해낸 감옥의 건축양식을 말한다. 벤담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하여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했다. 즉 벤담이 말하는 파놉티콘이란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공리주의자인 벤담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감시)으로 최대한의 효과(통제)를 거두는 파놉티콘은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벤담의 파놉티콘을 좀 더 근대적이며 철학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파놉티콘은 벤담이 제안한 감옥시설의 의미를 벗어나 근대적 감시의 원리를 체계화한 건축물이었고, 한명의 권력자가 다수의 군중을 감시하는 규율사회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푸코는 파놉티콘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통해 감시와 통제를 전제로 한 권력의 새로운 행사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벤담의 제안이나 푸코의 해석을 변용하면 권력자나 부모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으로 군중이나 아이를 통제하고 싶어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CCTV나 스마트폰의 위치정보를 통해 우리의 모든 행동이 감시되는 죄수가 아닐 수 없다.

 

 

#3.

21세기 한국사회는 나름 열린사회(?)이자 정보화된 사회이다. 정보화된 사회의 각종 정보화기기들은 편리성이라는 장점과 더불어 이를 이용한 감시와 통제기능도 가지고 있다. 의식했든 아니했든 간에 지금의 각종 정보화장비들은 전자적인 감시를 부수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것도 거의 모든 곳에서, 거의 모든 시간에.

 

정보화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각종 시스템을 통해 정보는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정교한 시스템을 통해 분류되거나 재생산된다. 재분류되거나 새로운 형태의 정보는 누군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사실은 과장되거나 영화에 나올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음흉한 권력자가 꿈꾸는 은밀한 세상의 이야기도 아니다.

 

회사원 A, 학생 B, C의 사례는 결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웃과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진행 중인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의 현실이 이러함에도 우리 스스로 감옥 몇 개를 만든다. 부자되기, 성공하기, 끊임없이 성장하기라는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감옥. 경쟁지옥인 한국사회에서 뒤처지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이 낳은 자발적인 감옥 말이.

 

우리는 늘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쩌면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진정 우리는 감옥에 살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