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배경도 다르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십대 후반의 두 아빠(대치동 아빠, 그냥 아빠)가 맥주집에서 만났다. 어차피 코드가 맞지 않는 두 사람인지라 그들의 대화는 맥주집 사장과 친해 공짜 술을 좋아하는 풍납동 아빠가 사회를 보면서 진행됐다. 주제는 서로 공감이 가능한 아이들 교육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먼저 나누기로 했다.

(사회자 아빠 : , 대치동 아빠 : , 그냥 아빠 : )

 

: 집안에 얘들이 몇 명인가요?

: 저 포함해서 세 명입니다. ㅎㅎ..

: 저 빼고 두 명입니다.

: 아 저는 저 빼고 와이프 포함 다섯 명입니다. ㅋㅋ..

 

: 아이들 구성이 어떻게 되시나요?

: 와이프를 전혀 닮지 않은 예쁜 공주 두 명입니다. 2, 4.

: 와이프를 빼닮은 잘생긴 아들 두 명입니다. 2, 6.

: ! 그러시군요. 저는 저를 빼닮은 공주 두 명과 아들 두 명입니다. 3,

      중2. 3, 다섯 살.

 

: 아이들 공부를 위해 학원은 보내시나요?

: , 큰애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학원을 보내고 수학은 별도로 과외

      도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영어, 수학 학원과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을 보내

      고 있 습니다.

: 예 큰애는 영어, 수학 두 과목 보내고 있습니다. 둘째는 합기도 학원만 보내

      고 있습니다.

: 우리집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을 제외하고 학원을 보내고 있

      지 않습니다.

 

: 사장님, 여기 맥주 세잔하고 마른안주 주세요. 땅콩도 좀 주시고요.

 

: 한 달에 아이들 학원비로 얼마정도를 지출하시나요?

: 글쎄요. 와이프가 알아서 하는지라 저는 잘 모르긴 하지만 과외비 포함해서

     약 4백만 원 정도는 될 겁니다. 대치동이 학원비가 쎄긴 쎄죠.

: 4백이요! (깜짝 놀라며) 우리집 한 달 수입이 4백만 원인데. 저희집은 7,80

      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 4백만 원은 장난이 아닌데요.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기에, 그 금액을 학원

      비 로 내고 있죠? 참고로 우리집 학원비는 제로입니다. 허허허.

: 전문직은 아니지만 맞벌이 부부라 둘이 합쳐 천만 원 정도 수입이 있습니

      다. 다만 거기에서 아파트 전세보증대출 관련해서 한 달에 이자비용만 150

      만원 정도가 나가고 있네요. 강남권 생활비 빼고 나면 저축하기도 빠듯하

      죠.

   

맥주와 안주를 서빙하던 술집 사장님이 지나가며, 학원비요, 우리는 세 명인디. 큰애한테만 과외 학원비 해서 한 달에 한 2백 들었을 것이요. 모르긴 몰라도. 근디 지가 안하니께 다 소용없드라고. 좋은 대학도 못 들어가고” . 나도 한잔 해불라요.....

 

: 애들이 학교공부는 잘 하나요? 실례가 안 된다면 성적이....

: 다행히 자기들 엄마를 닮지 않아 지금까지는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큰애는

     강남00중학교 자기반에서 4~5등 하고, 작은애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 우리집 애들은 엄마를 닮아 큰애는 반에서 가끔 1등도 하고 평균 2등 정도

      고, 둘째는 올A를 받아오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소싯적에 공부를 잘하긴

      했죠.

: 우리집 큰애, 둘째 학교는 성적표를 주지 않는다는데요????? 진짜로!!!

, : (입을 모아서) 아니, 그럴 리가요!!! 혹시.....

 

: 허허 두 분,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맥주를 벌컥 들이키며 큰소리로)

     장님 여 기 시원한 맥주 한잔 더요.

 

: 아이들 학원 보내는 보람이 있나요?

: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 애들한테는 비용 대비 효과가 그리 만족스

      럽 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대치동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학원

      잘 골 라 다녀서 성적 상위권 유지하는 애들이 많다고는 하죠. 애들 엄마도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 얘기 듣고 그네들 학원에 보내려고 고생하고 있죠.

      하기 싫은 운전도 배우고요....아이도 엄마도 고생이죠 머.

: 우리 큰애는 영어 수학 부족한 부분을 학원에서 보충하려고 다니기 때문에

      만 족하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대치동 아빠를 힐끗 쳐다보며) 저희 집은   

      비용 대비 효과가 만족스럽다고나 할까요?

: , 그렇군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문제라서 딱히 답은 없을 것 같네요.

      학원, 과외, 인강, 자기주도학습 모두 선택의 문제라서 자기 스스로 판단해

      야할 문제 로 보입니다. 우리 애들은 학원 대신 인강을 잘 활용하려고 하는

      데 만족도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 아이들이 학원 때문에 힘들어하지는 않나요?

: (잠시 머뭇거리며)사장님, 여기도 맥주한잔 추가입니다. 2 큰애가 학원

      끝나는 시간이 10시정도 되는데요. 집에 와서 간식 먹고 한, 두시 정도에

      자는 것 같은데요. 저랑은 평소 이야기는 잘 하는 편이라, 무지 힘들어하죠.

      저희 큰 딸은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 하기는 한데. 어쩔 수 없이 엄마의 

      권유 때문 에 다니는 것이라서. 힘들다고 말하는 큰딸을 보면 딱히 할 말은

      없..... 그 문제 때문에 부부싸움도 여러 번 했지만, 와이프 태도가 워낙에

      완강해서... 허 허허

: 우리 큰 아이는 두 과목을 번갈아서 매일 학원에 가는 것 같은데 저녁은 같

      이 먹고 있습니다. 저녁 먹고 잡담하고 공부하다가 12시 정도에 잠자러 들

      어갑니 다. 학원 다니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특별히 학원 때  

      문에 힘들 어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저도 맥주 한잔 추가

      요!

: 우리집 애들은 학원에 가본 적이 없어서 학원에 가는 것 자체가 힘들 것 같

      습 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중2라면 한창 놀고 잘 자야 할 나이죠.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수면부족으로 고생하는 애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

      이 먼저 듭니다. 두 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 맞습니다. 시대 상황이 틀리긴 하지만 저희때 중2는 엄청 자유로웠죠. 학원

      도 별로 없었고. 그때부터 인생이나 대학문제 같은 골치 아픈 문제를 고민

      하지도 않았었고....애들한테 말하면 욕만 먹을 얘기거리죠.

: 저도 그렇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좀 더 자유롭게 애들을 방치하고 싶습니

      다. 공부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문제이고, 너무 일찍부터 경쟁의 수레바퀴

      에서 애들이 시달리는 것도 문제고....그렇지만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

      국의 현 실이 녹녹치 않습니다. 두 분도 잘 아시잖아요.

: 그렇죠. 아이들이 힘들어한다고 해서 공부하는 문제를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습 니다. 어차피 뚫고 나갈거라면 애들에게 좀더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 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네요. 저 같은 경우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애들이 자 기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말씀에 동의합니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이

      나 회복탄력성이 없다면 일찍부터 번아웃될 수도 있어요. 생각만 해끔찍

      합니.

 

: 그렇다면, 애들도 힘들어 하고 부모들도 고통스러워하는 사교육문제의 해

      결책은 무 엇일까요? 힘들다고 애들 위한다고 학원에 안보내는게 유일한

     방법아니잖 아요?

: 뻔한 얘기이긴 하지만 결국 공교육의 정상화 아닐까요? 지금처럼 학원에서

      모든 것을 배워버리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죠. 정상이

      아닌 상황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부모들이나 선생님들도 문제고

      요. 생각해 보면 교육정책으로 교육환경을 바꾸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

      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육정책은 현장성이 떨어진 교육 관료들의 책상에서   

      나와서 교육현장의 목소리가 전달될 가능성도 적고 또한 정책입안자들의

      경험치가 부모들의 기대하는 정도에는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사교육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학원수강시간 제한이나 선행

      교육 금지라는 해프닝 같은 정책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거죠. 사교육 시장

      은 전형 적으로 풍선효과가 적용되는 영역입니다. 이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 는... 오히려 그런 정책들은 사교육 시장의 규모나 영향력을 키워

      주는 역효과 를 내고야 말죠. 반드시 좋은 의도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

      지는 않는 것 같 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교육문제의 해결책은 어떻게 하면 학원의 도움 없이도 학교

      내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관료들은  공교육 정상화하면 방과후 수업이나 쉬운 시험출제 정도밖에 생

      각 못합니다. 법으로 만들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해서, 공교육정상화법이라는

      이상한 법을 만 들기도 했죠. 법으로 다될 것 같으면 헌법 이외의 법들은 필

      요도 없을 겁니다.

: , 두 분이 일치해서 격하게 공감하시는군요.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공교

      육의 정상화 문제는 법적인 문제를 넘어 교육시스템 전반에 걸친 문제라고

      생각합 니다. 현행 일선 학교수업시간문제, 영어 수학에 치우친 수업과정,

      교육자들의 능력문제, 영어 수학에 치우친 대학수능, 현실에 맞지 않는 입

      학사정관제도 등 불필요한 제도의 도입, 지나치게 복잡한 대학입학전형의

      기형적 구조 등 상당 히 많습니다. 한두 가지의 해법으로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 서는 할 얘기는 많지만 차차 하기로 하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문제 있는 교육시스템에 분노하지 못하는 부모들입니

      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우리 현실은 무한 경쟁구도에 휩쓸려

      지나가 는 시험기계를 양산할 뿐입니다. 이런 현실을 방관하거나 방조하고

      있는 저를 포함한 우리 부모들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밉니다. 우리 부모들이

      함께 분노하고 교육정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는

      바쁘고 힘들 다고 아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잘못된 정책에 맡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크. 옳습니다. 무기력한 부모들이 무기력한 아이들을 키웁니다.

: 맞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먼저 깨우치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

      다. 교육부의 관료들이나 교육전문가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바람직한 정

      책을 만 들 수 있도록 부모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을 필요성이 있습니다.

 

: , 다 함께 한잔 하시죠. 사장님, 여기 시원한 것으로 세잔 더 주세요.

      사는 곳이나 경제적 배경뿐만 아니라 교육관이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분이 

      얘기를 끝내고 보니 공감하는 부분이 크네요. 지금부터라도 우리 아빠들이

      이렇듯 아이들 교육에 관한 문제를 인식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우리 스스로 생각

      하는 부모, 행동하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정책을 주제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시죠.

   

      , 건배한번 하실까요?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용기 있는 아빠들을 위하여!!!

      그럼, 오늘 술값은 대치동 아빠께서....

: (깜짝 놀라며) !! 제가....제가 내야죠. 이차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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